가계 빚이 사상 최대치 기록을 경신하면서 한국은행도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리게 됐다. 저금리에 기댄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기회복만 바라보고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대출이 많이 늘어난 것은 저금리에서 일정 부분 기인한다”고 시인한 바 있다. 향후 경기회복의 불씨가 간신히 살아난다고 해도 이자 부담을 고려해 최대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할 공산이 크다.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한은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은행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하는 오는 10월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수출이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기업 구조조정 여파로 내수경기까지 위축되면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이상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골드만삭스·BNP파리바·바클레이스 등이 10월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과 금리 인하가 동시에 단행될 것으로 내다봤고 노무라는 10월에 기준금리를 내린 뒤 내년 3월에도 추가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모건스탠리의 경우 올해 4·4분기, 내년 1·4분기와 2·4분기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했다.
하지만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에는 사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일단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통과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 타이밍을 잡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한은은 6월 기준금리를 1.25%로 0.255포인트 전격 인하하면서 금리 인하와 정부 재정보강으로 성장률이 0.2%포인트 상승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부담스럽다. 한은은 26일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연설이 예정된 잭슨홀 미팅에 매년 참석해오던 윤면식 부총재보가 아닌 장병화 부총재가 참석하기로 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변화가 있는지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총재 역시 당분간은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으로 경기둔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 총재는 이번 달 금통위 간담회에서도 “국내경기가 예상 외로 둔화한다면 재정의 추가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자동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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