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통 큰 결정을 해야 합니다.”
지난 1일 삼성전자의 무선사업부 사내망에 한 직원의 글이 올라오자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프리미엄 대화면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의 충전 중 소손현상(화재에 따른 손실)이 발생하고 회사 측이 배터리만 교체해줄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자 한 직원이 나선 것이다. 해당 글에는 금세 임직원들의 댓글들이 이어졌다. “어렵고 복잡한 상황일수록 원칙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저 또한 희생할 수 있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잇따랐다. “전량 리콜 후 신제품으로 교환해주세요. PS(성과급) 안 받아도 되니까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라는 글도 올라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영진도 나섰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 무선사업부장(사장)은 해당 글에 직접 “사업부장으로서 문제를 유발하게 한 점 부끄럽게 생각하고 여러분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품질에 대한 경각심을 극대화하고 고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무선사업부로 거듭나겠다. 매우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글을 올렸다. 고 사장의 글에는 1,800여건이 넘는 ‘좋아요(찬성)’가 달렸다. 다음날인 2일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배터리 결함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전격적으로 전량 리콜을 발표했다.
위기상황에서 삼성맨들은 달랐다. 불량률이 0.0024%에 불과함에도 경영진과 직원들이 적극 소통하며 고객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판단했다. 전량 리콜 결정으로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가량 줄어드는 상황임에도 과감한 선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다. 삼성 내부에서는 “‘고객과 함께한다’는 ‘삼성인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전격적인 이번 결정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후 달라진 삼성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올 들어 ‘스타트업 삼성’을 표방하며 조직문화 혁신을 추진하면서 열린 소통을 강조한 것이 위기에 빛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타트업처럼 직급이나 연차와 상관없이 회사를 위한 일이라면 아랫사람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회사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의 목소리를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경청한 것 역시 달라진 소통문화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대국민 사과 등의 전례를 봤을 때 ‘큰 틀’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이 부회장의 리더십 스타일”이라며 “이번 전량 리콜 결정 역시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전량 리콜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통해 위기상황을 정면 돌파한 것이 인상적”이라며 “이를 통해 당장의 수익을 잃었지만 더 중요한 고객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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