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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회생 DNA를 찾아라] 조선엔 퍼주기 하더니...해운은 물류대책 없이 '원칙'만 앞세워

<2> 일관성 없는 원칙·급조한 대책

해운 고용·협력사 적다는 이유로 법정관리행 결정

"현대상선 통해 한진 우량자산 인수" 탁상공론까지

몸사리는 관료·돈안쓰는 오너·발빼는 은행의 '惡手'

조선·철강도 치밀한 전략 없인 '한진 되풀이' 불보듯

0615A05 조선해운 구조조정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 한진해운 관련 금융시장 점검회의에 참석한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은 대내외에 천명해온 ‘소유주가 있는 회사의 유동성은 자체 해결한다’는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킨 사례로 ‘혈세 지킨 현대상선, 원칙 지킨 한진해운’으로 요약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다만 해운·항만 부문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해운 경쟁력 유지를 위해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인수하도록 추진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정 부위원장의 말 속에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 당국의 ‘원칙’과 ‘대책’이 모두 담겨 있다. 문제는 원칙의 일관성과 대책의 현실성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결정과 이후 불어닥친 후폭풍은 정부의 ‘원칙과 대책’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정부가 제시한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은 중요하며 이번 사태의 일차적 책임이 한진해운과 오너인 조양호 회장에게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전직 금융당국 고위관료는 그러나 “조양호의 한진해운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한진해운을 버린 꼴인데 과연 이런 방식으로 했었어야 하는지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STX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과정 등을 보면 정부의 구조조정 원칙에 과연 일관성이 있느냐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거대한 부실공룡 대우조선 구조조정은 말 그대로 ‘퍼주기 논란’이 계속된 끝에 검찰 수사까지 장기간 이어지며 온 나라와 정치권을 들쑤셔놓고 있다. 앞서 STX조선해양도 4조원이 넘는 혈세를 쏟은 끝에야 법정관리로 보냈다.

반면 해운업의 경우 고용인원이나 협력업체가 조선업보다 적은 산업이라는 이유로 대책 없이 법정관리로 보냈으나 파장은 되레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국제적인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이번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정권 말 몸을 사리는 관료집단과 더 이상 자금을 지원하기는 싫은 오너, 대기업 여신에서 발을 빼려는 채권단의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 아니겠느냐”며 “조 회장과 신경전을 벌인 게 수개월인데 법정관리 시나리오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과 국적 해운사 한 곳을 잃어버리며 생기는 잠재적 국가 손실에 대한 전망이 없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물류 마비 사태의 대책으로 다급하게 제시한 ‘현대상선을 통한 한진해운 우량자산 인수’라는 카드 역시 실효성이 없는데다 그 자체가 도산법의 원칙을 어기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현대상선에 다시 수천억원의 자금지원이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며 설사 자금지원이 용인된다 해도 한진해운의 해외 네트워크 역량과 같은 무형의 자산들이 현대상선이라는 다른 조직에 제대로 인수될 리 만무하다.

해운업계 핵심 관계자는 “해운업의 특성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며 “한진해운 인력이 현대상선으로 옮긴다 해도 2,000여 한진해운 화주 중 현대상선으로 옮길 곳은 10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관리로 보내놓고 구조조정에 다시 개입하는 정부의 모습도 이율배반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교수는 “정부 고위관계자가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에 판다고 했는데 이는 도산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으로 행정부가 법원과 채권단의 권한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며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한 후에는 정부가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 스스로 기업 구조조정 원칙을 지켰다고 자평하면서 상황이 다급해지니 최소한의 법적 원칙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다가올 연말 쇼핑 시즌을 앞두고 수출입 물량의 뱃길을 끊은 법정관리의 타이밍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의 치밀한 구조조정 전략이 도무지 없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남은 기업 구조조정이다. 수주절벽에 부딪힌 조선업은 시한폭탄을 안고 채권단 돈으로 연명하고 있으며 철강과 화학 등 우리 경제를 이끌던 산업들이 공급 과잉에 몸살을 앓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최대한 시장 자율적 구조조정을 유도한다는 또 하나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나 한진해운 구조조정에서 드러났듯이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금융논리로 진행되는 산업 구조조정은 한진해운 구조조정처럼 길을 잃을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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