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팔로어’는 한국 연구개발(R&D)의 현주소를 비판할 때 자주 쓰인다. 말이 좋아 재빠른 추격자지만 선진국의 선도기술에 자극 받아 그 기술을 재빨리 모방하는 ‘2등 전략’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뿐이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인 10월이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한 모방형 연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아직 우리가 2등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은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 증강현실(AR)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 고’ 열풍에서도 엿보인다. 뭔가가 뜨면 그제야 주목한다.
노용영 동국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이 같은 풍토가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노 교수는 “정부가 정한 국책 연구주제를 보면 상당수가 이미 구글·애플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나 선진국 학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했고 한두 단계 앞서나간 분야”라며 “이런 분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한테도 중요한지 따져봤는지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또 “미국은 우주발사체부터 생명공학까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것을 잘해내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찾은 대안은 ‘개인·공동체의 필요’에 천착하는 것이다. 그는 “국내에서 미세먼지에 대한 획기적 기술을 개발한다면 우리 공동체 문제 해결뿐 아니라 당장 대기오염 문제가 매우 심각한 중국에서 협력이나 사업 제의가 들어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것이 선진국에서 택했던 발전방식이라는 것이다. 노 교수는 “기술 자체를 모방하려 하지 말고 어떤 필요로 그 기술을 개발했는지, 누가 개발된 기술을 필요로 할지 고민해야 선도기술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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