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한진해운이 한진그룹 계열사 ㈜한진에 매각하기로 한 ‘아시아·동남아 항로 영업권’ 이전 작업을 전면 중단시켰다. 처분 가능한 주요 자산이 한진그룹과 다른 민간업체로 넘어간 상황에서 해운 영업의 기초가 되는 아시아 노선 영업권마저 없으면 한진해운의 회생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8일 정부와 한진해운, 한진그룹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지난달 31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 ‘아시아·동남아 8개 영업노선’을 ㈜한진으로 양도하기 위해 진행되던 실사에 대해 ‘중지 명령’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법정관리 후 무형자산 이전 절차를 중단한 상황”이라고 전했고 한진그룹 관계자도 “(법원 명령에 따라) 더는 실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이사회는 지난 6월24일 그룹사인 ㈜한진에 한중 2개와 한일 2개, 동남아 4개 등 8개 노선의 영업권(노선·화물 영업·항만하역 면허 등)을 621억원에 양도하는 안을 의결했다. 당시 용선료와 항만 이용료 등 2,400억원을 연체하고 있었던 한진해운은 아시아 영업 노선을 양도해 부족한 유동성을 마련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621억원 가운데 300억원을 선지급 받고 나머지 금액은 ㈜한진의 실사를 통해 최종 양도 노선을 선정한 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법원의 명령으로 영업권 이전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미 한진해운의 핵심자산 대부분은 한진그룹 계열사와 사모펀드 등에 매각됐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5월 한진해운은 ㈜한진에 평택컨테이너터미널 지분(68%·144억원)을 매각한 데 이어 부산 한진해운신항만지분(50%+1주·1,354억원)도 11월 팔았다. 연간 1,300억원이 넘는 수익을 내는 벌크선 회사 H라인해운도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로 양도됐다. 도쿄 사옥도 이미 한진그룹 계열사에 모두 넘어간 상황이다. 여기에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자 미국과 유럽연합(EU), 그 외 지역에서 쓰는 상표권도 한진그룹에 약 1,800억원에 양도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한진해운이 한진그룹에 넘긴 자산은 4,300억원에 달한다. 물론 한진그룹에 상표권 등을 높은 가격에 매각해 얻은 자금으로 유동성 위기를 버틸 수 있었다.
아시아·동남아 영업권 이전도 이 같은 상황에서 나왔다. 더 이상 매각할 자산이 없자 영업권을 그룹으로 이전해 유동성을 수혈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아시아·동남아 8개 노선 영업권까지 그룹으로 넘어가면 향후 한진해운 회생을 위한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해 매각을 중단시켰다. 실제로 아시아항로는 한진해운 영업의 핵심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다. 한진해운의 올해 수송계획을 보면 아시아역내항로(30%)는 태평양항로(41.2%)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한진해운이 아시아·동남아 노선 영업권만 확보하면 글로벌 해운동맹 ‘디(THE)얼라이언스’에서 퇴출당해도 독자적으로 아시아 역내에서 영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영업권 이전 결정 때 고려해운과 흥아해운, 장금상선 등 역내 해운사들이 “미주와 유럽노선을 운항하던 대기업이 중견 해운사의 일감을 뺏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 물류학부 교수는 “한진해운은 중국 등에서 화물을 국내로 옮기고 다시 미주·유럽 등 원거리 노선으로 운항한다”면서 “특히 물동량이 늘어나고 있는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노선은 미래 먹거리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다만 한진해운은 매각이 중단되면서 (주)한진에서 받았던 선급금 300억원은 되돌려줘야 한다. /세종=구경우기자 이종혁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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