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원대 자산가인 A씨는 올 초 ‘롱쇼트 헤지펀드’에 10억원을 투자했다. 오를 종목은 사들이고 떨어질 종목은 공매도(쇼트)하는 투자기법으로 “상승장·하락장에서 모두 이길 수 있다”는 프라이빗뱅커(PB)의 설명만 믿고 투자한 것이 화근이었다. A씨가 투자한 펀드는 올해 들어 -10%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A씨처럼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헤지(분산)하지 못하는 헤지펀드 운용사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전체 헤지펀드 설정액은 최근 3개월 동안 1조원가량 늘었지만 대신자산운용의 헤지펀드 설정액은 현재 754억원으로 200억원 이상 줄었다. 브레인자산운용은 같은 기간 헤지펀드 수가 4개에서 6개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설정액은 2,670억원으로 오히려 100억원가량 감소했다.
지난 3월 투자자문사에서 자산운용사로 변경한 한 회사 관계자는 “출범 초기보다 한풀 꺾인 분위기가 완연하다”며 “자금 모집하기가 훨씬 힘들어졌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헤지펀드가 부진한 수익률을 면치 못한 데 대해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장세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한 대형 운용사의 헤지펀드운용본부장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이후 증시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헤지펀드 수익률도 나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공매도는 물량이 많아 주식을 빌리기 쉬운 대형주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최근 대형주를 중심으로 상승하다 보니 공매도로 손실을 입기 십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박스피 장세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롱쇼트’ 펀드마저 부진에 빠지자 국내 헤지펀드 시장의 ‘기본기’를 연결짓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대형 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헤지펀드 시장에서 비중이 높은 롱쇼트 헤지펀드들의 부진과 관련해 “냉정하게 보면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롱도 틀리고 쇼트도 틀렸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국내 헤지펀드 시장 자체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월가의 헤지펀드 전략을 어설프게 베껴오면서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외국인의 힘이 강한 국내 증시환경에서는 글로벌 시장 전체를 보는 월가 헤지펀드를 흉내 내다 낭패를 본다는 의미다.
한 헤지펀드 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도 “국내에는 다양한 헤지펀드 전략이 등장하기도 어렵고 아직 충분히 실력을 쌓은 매니저도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삼성자산운용이 지난해 말 역외 헤지펀드를 선보였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국민연금이 글로벌 헤지펀드에 올해 처음으로 1조원을 위탁 운용했지만 토종 펀드에는 자금을 맡기지 않고 있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특정 투자기법, 자산에 전문성을 갖춘 ‘특화 운용사’가 더 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베트남에 집중 투자하는 피데스자산운용, 메자닌 헤지펀드에 특화된 씨스퀘어자산운용, 기업공개(IPO)를 적극 활용하는 파인밸류자산운용 등이 기반을 쌓고 있지만 여전히 정체성 없이 투자 트렌드만 좇는 운용사·운용역들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해 말 금융당국이 증권사에도 시장 진입을 허용하면서 헤지펀드 시장의 몸집 불리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지 NH투자증권·토러스증권·코리아에셋투자증권이 각각 1호 헤지펀드를 출시하고 운용 중이다. 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HMC투자증권 등도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느 헤지펀드 매니저, 운용사가 실속을 챙기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행처럼 헤지펀드 열풍에 동참하기보다 신중하게 옥석부터 가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유주희·박민주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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