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과잉 상태에 빠져있는 국내 석유화학품목의 생산을 줄이기 위해 설비를 감축하라고 압박했다.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설비와 가동률을 줄이고 있지만 이보다 더 강한 강도로 전체 사업재편을 하라는 의미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석유화학업계와 간담회를 개최했다. 주 장관은 이 자리에서 “최근 일부 석유화학업계의 경영성과는 저유가라는 외부요인에 기인한 면이 많다”며 “고유가와 후발 개도국의 추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제적인 사업재편을 통해 불필요한 군살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는 허수영 롯데케미칼·석유화학업회 회장을 비롯해 LG화학, SK종합화학, 한화케미칼, 대림산업 등 10개사 대표가 참석했다.
주 장관의 강한 발언은 최근 중국 등의 생산량이 늘어나며 범용 유화 제품의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페트병의 원료인 테레프탈산(TPA)는 공급과잉으로 인해 수출이 2011년 362만톤에서 지난해 231만톤으로 반토막 났다. 정부는 이날 나온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의 컨설팅 결과를 인용해 공급과잉 품목인 TPA, 폴리스티렌(PS)의 설비를 더 줄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타이어 원료인 합성고무(BR·SBR)와 파이프용 소재 폴리염화비닐(PVC)도 추가 증설 없이 고부가 품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 장관은 “제시된 4개 품목이 우리나라 석유화학 전체 생산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지만, 생산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대표적인 대기업”이라며 “(설비감축 및 고부가 제품 전환은)향후 국내 화학 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가늠할 수 있는 1차적인 잣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중국과 인도 같은 후발국이 빠르게 추격해오고 선진국들은 고부가 영역으로 큰 폭으로 앞서나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추월에 실패하고 후발에 따라 잡히는 ‘중간에 갇힌(Stuck in the middle)’ 경고의 메시지도 들린다”며 “설비 통폐합 등 선도적으로 사업재편에 나서는 업체에 대해 ‘기활법’에 따른 세제, 금융, 연구개발(R&D) 등 지원제도와 함께, 상법과 공정거래법 상 절차 간소화를 비롯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적극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주 장관은 이날 중국 고전 춘추(春秋) 좌씨전(左氏傳)에 나오는‘거안사위 사측유비 유비무환(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평안히 지낼 때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고,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면 준비가 되어있어야 근심할 일이 없다) 문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주 장관의 강한 주문에 허수영 석유화학협회 회장은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자세
로 (사업재편) 임하겠다“며 “앞으로 범용제품에서 벗어나 기능성 화학소재와 고부가 정밀화학제품 육성을 위해 기술개발과 설비투자 확대에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답했다./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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