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즉석식품 매출이 올 들어 무섭게 뛰고 있다. 활력을 잃은 내수 경기 탓에 대부분의 유통업체가 매출 부진을 겪고 있지만, 편의점은 되레 실적이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늘어난 1인 가구가 도시락을 찾으면서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됐고 제품 품질이 높아져 매출이 함께 늘어나는 경제 선순환 구조도 형성됐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8월 편의점의 즉석식품 매출은 전년 대비 50.6%를 증가했다. 즉석식품과 음료 등을 포함한 전체 편의점 식품 매출 증가율은 22.8%에 달했다. 8월 대형마트 식품 매출 증가율이 2%, 대형수퍼마켓(SSM)은 0.5%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매출 상승이다.
올 들어 편의점 식품 매출은 매달 20% 수준의 고공행진하고 있다. 편의점 식품 매출을 견인하는 품목은 즉석식품(신선식품 일부 포함). 산업부가 집계하는 즉석식품은 도시락과 삼각김밥, 김밥 등 간편 식품을 말한다. 즉석식품의 매출 증가세는 말 그대로 무섭다. 8월 즉석식품 매출이 전년 대비 50.6% 뛰었고 7월은 45.6%, 6월은 47.7%, 5월은 45% 증가했다. 올해 8월 기준 편의점 즉석식품 평균 판매 증가율은 46.1%에 달한다. 2014년 편의점 평균 판매증가율은 전년 대비 4.95%, 지난해는 17.8%였다. 판매증가율이 2년 사이 4%대에서 40%대가 된 셈이다.
즉석식품 판매증가를 이끈 제품은 단연 도시락이다. 편의점 씨유(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관계자는 “올 들어 도시락 매출이 지난해보다 세 배정도 늘어났다”면서 “매출 상위 품목 10개 가운데 3개가 ‘백종원 도시락’인데 이런 일은 회사가 설립된 지 27년 만에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도시락 매출은 늘어나는 1인 가구가 끌어올렸다. 통계청이 9월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부문’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520만 가구로 전체(1,911만가구)의 27.2%를 차지했다. 세 집 중 한 곳이 혼자 사는 시대다. 2000년 15.5%였던 1인 가구는 2005년 20%를 넘어섰고 곧 30%대를 앞두고 있다. 취업난으로 결혼마저 늦어지거나 결혼을 포기하면서 1인 가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1인 2035년 1인 가구가 34.3%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증가하는 1인 가구만으로는 가파른 편의점 즉석식품 매출 증가율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1인 가구는 매년 5% 수준으로 증가하는데 편의점 즉석식품 매출은 50% 가까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즉석식품 판매 증가의 원인을 ‘경쟁’에서 찾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자 편의점 점포 수도 덩달아서 증가했다. 편의점들은 추세에 맞춰 간편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도시락을 대거 출시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한 끼를 원하는 1인 가구들은 시장보다 똑똑했다. 1인 가구는 소비성향(소득 중 소비 비율)이 80.5%(2014년 기준)로 전체 평균(73.6%)보다 높지만, 그렇다고 아무 제품이나 먹지 않는다.
2009년 업계에서 일어난 ‘창렬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세븐일레븐이 가수 김창렬 씨의 이름을 딴 즉석식품 ‘김창렬의 포장마차’ 시리즈를 PB상품(위탁생산 후 유통업체 브랜드로 내놓은 제품)으로 내놓자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김창렬 시리즈는 비싼 가격에 비해 맛과 양이 너무도 빈약했다. 급기야 소비자들은 가격에 비해 (맛과 양이) 형편없다는 의미를 담은 ‘창렬스럽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바가지’ 딱지를 붙였고 제품들은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결국 세븐일레븐은 창렬시리즈 판매를 중단하고 품질을 높여 가수 혜리 이름을 딴 도시락을 팔고 있다.
반면 2010년 편의점 GS25가 내놓은 배우 김혜자 씨의 이름을 딴 도시락은 불티나게 팔렸다. 가격에 비해 반찬의 양과 맛이 준수했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비해 알차다는 뜻의 ‘혜자스럽다’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외에도 ‘갓(God) 혜자’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마더 테레사를 빗댄 ‘마더 혜레사’ 등의 신조어로 제품을 극찬했다.
결국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난 2010년 이후 김혜자 도시락이 등장했고 다른 편의점들도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내놓으려 하면서 전체 즉석식품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식당에서 혼자 먹기를 꺼리는 우리 국민들은 품질이 좋아진 도시락 등 즉석식품 이용을 늘렸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수년 동안 시장에서 박 터지는 경쟁을 하면서 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면서 “편의점 도시락이 시중에 파는 도시락보다 품질이 높았으면 높았지 떨어지지 않는 수준까지 왔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편의점 사업은 더 성장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높아진 품질로 롯데리아,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Fast Food)나 분식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편의점 즉석식품으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편의점 시장이 패스트푸드 시장을 압도하는 일본 모델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지난해 기준 편의점 시장 규모가 10조엔을 넘어섰다. 반면 패스트푸드 시장은 경기의 활력이 떨어진 1990년 이후 정체돼 2조엔 수준에서 정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손윤경 SK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기준 전국에 2만9,000여개의 편의점이 있고 이 가운데 50%가 주택가 근처에 있다”면서 “간편식 수요가 많은 1인 가구의 수요를 흡수하기에는 편의점 만한 위치 선점도 없다”고 분석했다./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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