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지금 ‘벤치클리어링’ 중이다. 벤치클리어링이란 스포츠 경기 도중 몸싸움을 벌이는 선수나 심판을 제지하기 위해 벤치(덕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가 벤치가 텅 비는 상황을 말한다. 야구에서 ‘빈볼’(투수가 고의로 타자의 머리를 향해 던지는 공) 시비로 투수와 타자가 갈등을 벌일 때 자주 연출된다. 새누리당은 지난 26일 1년에 한 번뿐인 국회 국정감사에 단체 불참을 선언하며 자리를 깨끗이 비워둔 상태다.
새누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벤치클리어링에 나선 것도 빈볼 시비 때문이었다. 다만 빈볼을 먼저 던진 쪽은 새누리당이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을 향해 던지는, 의장직 사퇴를 요구하는 빈볼이었다. 새누리당은 지난 9월 1일 ‘정기국회 개회사 논란’ 당시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촉구한 데 이어 지난 26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본회의 처리와 관련, 두 번 연속으로 빈볼을 날렸다.
이들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어겨 의회주의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정세균 의원이 파괴한 의회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거야(巨野)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선 비상한 방법을 쓸 수 밖에 없다”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기까지 했다.
새누리당이 연이어 던진 빈볼은 지난해 4월 한화이글스와 롯데자이언츠 경기에서 있었던 ‘이동걸 빈볼 사건’과 유사하다. 한화이글스는 크게 앞서고 있던 롯데자이언츠의 황재균을 향해 두 번이나 빈볼을 던졌다. 점수 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음에도 황재균이 도루를 시도하며 ‘야구의 불문율’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야구에서 승리가 확실시되는 팀은 상대 팀에 대한 예의로 도루를 시도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이 사건에서 한화이글스는 새누리당, 대승 중이던 롯데자이언츠는 여소야대의 더불어민주당, 황재균은 김재수 해임건의안의 본회의 처리를 강행한 정세균 국회의장을 연상시킨다. 당시 빈볼의 고의성이 명확했던 한화이글스의 이동걸은 즉시 퇴장당했고 한화이글스는 이날 3-15로 완패했다.
재밌는 사실은, 황재균의 도루는 불문율을 어긴 것일 뿐이지만 한국프로야구에서 빈볼은 엄연한 퇴장사유라는 점이다. 한국프로야구 규정은 고의성과 관계없이 속구가 타자의 머리를 스치거나 맞을 경우 해당 투수는 즉시 퇴장된다. 실제로 맞지 않았더라도 공이 두 차례 머리 쪽으로 날아가면 역시 퇴장이다.
정작 빈볼을 던진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이 헌법과 국회법에 맞게 국회를 운영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새누리당 투쟁의 진정한 목표”라면서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더욱 명확하고 확고하게 규정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 등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불문율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벤치클리어링에는 점수가 뒤처진 팀이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벌이는 ‘계산된 쇼’의 성격도 있다. 야구경기에서는 지고 있던 팀이 벤치클리어링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여소야대가 된 국회의 상황은 다음 선거까지 바뀔 수 없다. 이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건 새누리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이 벤치클리어링의 목적은 무엇일까. 새누리당이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는 와중에도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대한 의혹은 쏟아져 나왔다. 검찰은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조건부 수용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도는 자극적인 벤치클리어링의 장면 뒤로 밀리고 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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