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3개월 가까이 남았음에도 내년에 한국 정부가 추락하는 경기를 방어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해외 투자은행(IB)에서 나왔다. 건설에만 의존하는 ‘외바퀴’ 성장세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구조조정 등으로 경기전망은 어두운 반면 이를 완충할 내년 예산안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프랑스계 IB인 소세에테제네랄(SG)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내년에도 추경을 편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2·4분기 경제성장률의 절반을 건설 부문에서 담당할 정도로 경제가 건설에 의존해왔다”며 “하지만 내년부터 건설 업황이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김영란법과 조선·해운업을 넘어 철강·석유화학으로까지 진행되는 구조조정, 밖으로는 미 금리 인상,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의 불안, 고질적 수출부진 등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
반면 이에 대응할 재정은 미흡하다는 평가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은 400조7,000억원으로 올해 푸는 돈(398조5,000억원, 추경 포함)에서 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해 본예산(386조 4,000억원) 대비로도 3.7% 증가에 머물렀다. 재정이 경제가 팽창하는 만큼(내년 경상성장률 정부 전망치 4.1%)도 풀리지 않는 셈이다.
오석태 SG 이코노미스트는 “본예산을 보수적으로 잡고 매년 중반 추경을 편성하는 패턴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이후 4년간 추경을 세 번 편성했다. 그는 “국내총생산(GDP)의 0.5%인 8조원 규모의 추경이 편성될 가능성이 있고 이 중 일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급감한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행과 학계 등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열린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내년 예산을 확장적으로 늘려 잡았다지만 경기회복에 충분할 정도인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며 “정부가 (경기회복보다) 재정건전성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경기가 상당한 하강압력을 받고 있지만 내년 예산안은 경제가 팽창하는 속도만큼도 늘지 않았다”며 “국회 논의과정에서 증액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은 구조개혁의 경기하방 압력을 완충할 수 있다”며 한국에 확장 재정정책을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불안한 경기·소극적 예산에 대선 변수까지...벌써부터 내년 추경론
SG “한은도 내년 1, 2분기에 금리 인하할 것”
올해가 아직 석 달이나 남았고 내년 예산안의 국회 심의는 시작되지 않았으며 올해 편성된 추경예산이 다 집행되지도 않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내년에 한국이 추경을 편성할 것이라는 전망은 섣부른 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재정정책 패턴을 보면 간과할 수 없는 주장이다. 정부는 본예산을 긴축적으로 편성하고 경기가 안 좋아져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십자포화가 쏟아지면 부랴부랴 추경을 편성하는 일을 반복했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첫해인 2013년 4월,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취임과 동시에 17조3,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2014년 한 해를 거른 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때인 2015년 11조6,000억원의 추경이 편성됐으며 올해도 11조원 규모가 국회에서 확정돼 현재 집행되고 있다. 내년 본예산 확장세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대통령선거(12월)까지 다가온다면 정권 차원에서 경기부양용 추경의 불씨를 댕길 수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도 이 같은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매년 중반에 경기가 안 좋아지고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뭐라도 하라’는 주장이 반복해서 제기돼왔다”며 “결국 추경밖에 없는데 만약 본예산을 확장적으로 잡고 여기에 더해 추경까지 편성하면 재정건전성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에 따른 미래의 복지 부담, 통일 비용 등으로 재정건전성을 사수해야 한다”며 “본예산 규모를 보수적으로 편성해야 나중에 추경을 해도 우리 재정건전성을 지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 경제연구소, 해외 IB를 중심으로 내년 성장률 전망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성장률이 2.3%로 지난해(2.6%)보다 둔화하고 내년에는 2.2%로 더 낮아질 것으로 봤다. 분기별 경제성장률(전년 대비)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HSBC는 3·4분기 2.0%에서 4·4분기 1.6%로 둔화하고 내년 1·4분기, 2·4분기에 각각 1.8%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무라도 4·4분기와 내년 1·4분기에 각각 1.8%를 기록하고 2·4분기에는 1.7%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SG는 한국은행도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내년 1·4분기와 2·4분기에 한 차례씩 총 0.5%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기준금리는 사상 처음으로 0%대(0.75%)로 떨어진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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