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반응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벌어진다. 화학 작용으로 인해 생성되는 반응 중간체는 1,000분의1초~100분의1초 정도밖에 살지 못하고 ‘찰나의 생’을 마감한다. 분자 모두가 애초의 계획대로 화합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분자는 혼합에 성공하지만 다른 것은 시도도 못해보고 사라진다. 반응 중간체를 ‘사납게 날뛰는 야생마’에 비유하는 이유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화합물은 순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써 화합물을 만들어서 이를 분리·정제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10월 수상자인 김동표 포항공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이 같은 초단(超短) 수명 반응 중간체를 1만분의1초 단위로 제어할 수 있는 특수 미세화학반응 장치와 합성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야생마와 같은 반응 중간체를 ‘길들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온도를 낮춰 반응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것으로 현재까지도 많이 활용되는 방법이다. 김 교수는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환경을) 최대 영하 100도까지 떨어트리면 중간체가 비교적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만 이는 한계가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개발된 접근법이 화학 반응의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장치와 기술은 화학 반응 시간을 1,000분의1초 단위로밖에 제어할 수 없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비유하자면 100m 달리기 신기록을 세운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팀은 실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미세반응기를 설계해 제작했다. 미세반응기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가느다란 파이프와 좁쌀보다 작은 저장소로 구성됐으며 각각의 반응물질이 반응기의 가느다란 파이프를 타고 흐르다가 만나 파이프 안에서 반응을 일으키는 식이다. 폴리이미드 필름에 아주 작은 채널을 만들고 각 필름들을 쌓아올려 3차원 구조의 혼합 미세반응기를 만들었다. 미세반응기는 액체나 기체 물질이 흐를 수 있는 미세 채널을 통해 다양한 화학·생물 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화학반응기이다. 연구팀은 부피 25나노리터(nℓ), 길이 1㎜ 안에 3차원 채널이 형성된 미세반응기로 중간체의 반응 시간을 1만분의1초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하면 반응 중간체의 화학 반응 과정이 1만분의1초 내에 순차적으로, 온전히 일어나도록 할 수 있다. 원하지 않는 반응을 억제, 별도의 분리·정제의 과정이 필요 없이 처음부터 고순도의 화합물 생성이 가능하다. 한 종류의 분자물질만으로도 고순도로 화학 물질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일본 교토대 화학과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해 속전속결 방식의 화학 반응 과정을 연속흐름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검증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구성과는 신약·신물질 개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특히 약은 불순물이 조금만 포함돼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니 반응 중간체 제어기술이 매우 유용할 것”이라며 “다국적 제약사들은 (반응 중간체 제어기술에) 예전부터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꼭 신약·신물질 같은 거창한 분야만을 고려해 연구를 한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성과를 화장품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은 피부에 항상 닿아야 하기에 순도가 높아야 한다. 김 교수는 “화장품 첨가제와 연구성과를 연결하면 좋은 ‘창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함께 머리를 맞댈 젊은 연구자나 학생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통제 가능한 시간 단위를 100만분의1초, 1,000만분의1초까지 낮춰 ‘마이크로초(100만분의1초) 화학’의 장을 활짝 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지금은 관찰할 수도 없는 분자의 변형을 마치 100만장, 1,000만장의 사진처럼 촬영해 이를 ‘상영’하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화학 연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세계에서 세 번째로 포항공대에 설치된 ‘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마이크로초 화학을 큰 폭으로 도약시킬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사용하려면 화학은 물론 물리학적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해 이달부터 ‘가속기 튜토리얼’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연구진과 학생이 모두 공부할 수 있도록 해 또 다른 연구성과를 내는 데 박차를 가할 각오입니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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