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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늑장공시' 재발 막는다] "5년 걸리는 사업에 공시는 단 한줄뿐"

적기 정보제공 '깜깜이 투자 피해' 차단

한미약품 '공매도 폭탄'

불공정거래 혐의 발견땐

즉각 '패스트트랙' 절차





“계약금 5,000만달러와 함께 임상시험, 시판 허가 등에 성공하면 마일스톤(단계별 기술 수수료) 6억8,000만달러를 별도로 지급받는다.”

한미약품(128940)이 지난해 7월28일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항암 신약(올무티닙) 기술판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공시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임상시험의 계획과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얼마를 받게 되는지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분기별 감사보고서나 별도의 추가 공시로 사업 진행상황에 대해 알리지 않던 한미약품은 기술판매 계약 체결 뒤 1년2개월을 넘긴 지난달 30일 갑작스럽게 해지 사실을 전했다. 한미약품이 기술수출에 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상황을 투자자들에게 알린 셈이다. 이른바 ‘깜깜이 계약 공시’다.

제약사는 신약의 임상시험 초기 단계에서 기술판매 계약을 체결한 뒤 결과가 진척될 때마다 마일스톤을 받는다. 마일스톤은 일종의 신약개발 성공보수다. 신약 임상시험이 중간에 실패하면 계약금 등 일부만 수령할 수 있다. 신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4단계에 걸친 임상시험을 거쳐 판매까지 길게는 5년 이상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미약품이 투자자들에게 굉장히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한 셈이다.

이 같은 기술기업의 판매 계약은 조선·건설사의 수주 계약과 유사하다. GS건설과 삼성엔니지어링 등 일부 건설업체들은 해외 프로젝트를 덤핑 수주해 사업장 부실을 쉬쉬하다 한꺼번에 부실을 떨어내면서 회계 및 실적 절벽을 초래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파문도 수주산업의 특성에서 비롯된 참극이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수주업종 기업들이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정확히 공시하지 않아 투자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보는 사태가 발생하자 지난해 회계·공시 강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석란 금융위 공정시장과장은 “기술기업의 사업 진행 정보가 투자자들에게 제때 공급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율공시 사항으로 돼 있는 기술판매 계약을 의무공시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상장사는 자율공시 사항을 사유 발생 후 다음날까지 공시를 내면 되지만 의무공시는 당일 내보내야 한다. 개선안이 적용되면 한미약품처럼 악재성 공시를 뒤늦게 내보내서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최대 2억원에 불과한 상장사의 공시 위반 제재금을 높이는 등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것도 금융위의 검토 대상에 포함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투자자들에게 적시에 사업 정보를 공시하지 않으면 철퇴를 맞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처벌 수위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공시제도 개편과 별도로 한미약품의 주식을 둘러싼 불공정거래 혐의 조사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조사 과정에서 불공정거래 혐의점이 발견되면 징계안 의결기구인 증권선물위원회의 논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패스트트랙’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금융위 산하 자본시장조사단은 지난 4일 한미약품 본사로 현장조사를 나가 회사 관계자들의 휴대폰을 확보한 뒤 통화 내역과 메신저 내용 등을 살펴봤다. 특히 자조단과 한국거래소는 한미약품과 펀드매니저들이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기술판매 계약 취소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공매도 주문을 냈는지 분석하는 중이다. 실제 한미약품이 지난달 30일 오전9시29분 악재성 공시를 내기 전인 9시부터 9시28분까지 총 5만471주가 공매도됐다. 한미약품 임직원이 일부 펀드매니저 등에게 기술판매 계약 해지와 같은 미공개 정보를 건넸다면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양쪽에 모두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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