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네는 인사지만 의미는 180도 달라졌다. 여기서 의미하는 밥은 ‘쌀’이 아니다. ‘밥=쌀’의 공식이 깨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이미 고전(古典)처럼 지키기 어려운 옛말이 돼 버렸다. 아침밥은 모닝커피와 빵 또는 시리얼로 대체됐고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일정 기간 탄수화물, 특히 쌀을 아예 끊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주로 세종에서 머물지만 부득이하게 서울에서 세종으로 출근해야 할 때는 아침을 전혀 못 먹는다”며 “평상시에도 쌀을 하루 한 공기에서 한 공기 반 정도 먹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급격하게 줄어든 쌀 소비량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당 쌀 소비량은 30년 새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1985년에는 1인당 연간 128.1㎏의 쌀을 소비했지만 지난해는 이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62.9㎏으로 떨어졌다. 특히 지난해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72.4g로 전년보다 3.3% 감소했다. 보통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이 100~120g인 것을 고려하면 전 국민이 하루에 공깃밥 두 그릇을 먹지 않는다는 얘기다. 여기에 건강을 위해 쌀 섭취를 줄이고 보리, 밀 등 잡곡을 먹는 사람들도 증가추세다. 쌀을 제외한 기타양곡계 소비량은 지난 2007년 7.9㎏에서 지난해 8.8㎏까지 0.7㎏ 늘었다.
더 큰 쓰나미는 ‘1인 가구’ 증가다.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520만 가구로 전체(1,911만 가구)의 27.2%를 차지했다. 세 집 중 한 곳이 혼밥족(族)이라는 얘기다. 1인 가구는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00년 15.5%였던 1인 가구는 2005년 20%를 넘어섰고 곧 30%대를 앞두고 있다. 취업난으로 결혼마저 늦어지거나 결혼을 포기하면서 1인 가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2035년 1인 가구가 34.3%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국내 농촌정책을 총괄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6일 ‘쌀 수확기 안정대책’을 내놓으면서 올해 쌀 생산량 420만톤 가운데 초과물량으로 전망되는 30만여톤을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하겠다고 밝혔다. 초과 물량이 시장에 풀리는 것은 막아 쌀값 폭락을 막아보겠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응급처치’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다수를 이룬다. 결국 국민들이 쌀을 많이 소비해야 쌀값 폭락을 막고 농민들의 시름도 덜 수 있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미 정부가 시장에서 거둬들인 쌀 재고량은 지난 8월 기준 175만톤을 기록하는 등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점(133만톤)보다 42만톤 많고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 재고량(80만톤)을 2배 이상 웃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농식품부는 주기적으로 밥 먹기 캠페인을 벌이는 등 쌀 소비확대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농식품부는 지난 5월에 “가족사랑, 가족밥상으로 실천하세요”라는 슬로건을 선포하고 서울, 부산, 대구, 인천, 전남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전국 단위 캠페인을 전개했고, 이달 4일부터는 국제구호개발 비영리단체인 굿네이버스와 함께 결식아동 대상 아침밥 기부 캠페인인 ‘밥킷리스트’를 시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밥은 곧 쌀’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쌀을 원재료로 한 다양한 식품을 개발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춘 고품질 식품을 만들어 국내 소비자는 물론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창길 농촌경제연구원장은 “결국 무엇을 먹을지는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1인 가구에 대한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과 쌀을 원료로 한 간편 조리 식품에 대해 개발을 하는 동시에 해외 고급미(米) 시장을 중심으로 지역의 수요에 맞는 고품질·기능성 쌀을 생산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