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광산회사 글렌코어 Glencore는 지난해 큰 위기에 봉착했다. 주가뿐 아니라 금속, 곡물, 석유 제품의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었다. 포춘이 베일에 싸인 스위스 광물 업체의 생존 스토리와 원자재 호황이 끝난 현재의 성장 전략을 들여다봤다.
아프리카의 눈부신 태양 빛을 받으며 날아가는 8인승 비행기 밑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이 보인다.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영토 위에 둥글게 파인 대형 구덩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검푸른 빛으로 물든 모습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외진 나라 중 하나인 콩고가 땅 밑에 엄청난 양의 광물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은 활주로에 착륙해 비포장 도로와 흙 벽돌 집을 따라 30분 정도 달려야 비로소 검푸른 빛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구덩이 가장자리에서 바닥까지의 깊이는 450피트다. 그 모습이 마치 네온색 크레용으로 그린, 짙은 검은색 땅에서 피어나는 초록 새싹 같았다.
페루 출신 엔지니어 페드로 킨테로스 Pedro Quinteros는 “세계 최고의 광산 중 일부가 콩고에 있고, 그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3개 대륙에서 수 십 년 동안 채굴을 전문으로 했던 그가 현재는 우리가 방문한 무탄다 마이닝 Mutanda Mining 이라는 9년 된 코발트 및 구리 광산 시설의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었다. 그는 “이 곳의 광석은 구리가 30%까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구리 성분이 1%, 칠레는 0.5% 미만이다”라고 경외심을 표하면서, 거대한 갱 속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110톤 트럭들이 돌과 흙을 퍼 담으며, 지상으로 귀중한 광물을 싣고 올라왔다. 그는 “평생 일하면서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곳의 광산 규모만큼이나 독특한 것이 이 광산을 소유한 글렌코어라는 기업의 존재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겐 이 회사의 이름이 낯설다. 그건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 거대 광물기업의 본사가 금융 중심지 월가와 런던의 열광적인 관심에서 멀리 떨어진, 스위스 취리히 인근 바르 Baar라는 조용한 마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세율도 낮다. 유리와 철근으로 둘러싸인 4층 본사 건물의 조용한 사무실에서 트레이더들과 매니저들이 원자재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구불구불한 언덕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소들의 모습을 창 밖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스위스 초콜릿 포장지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다.
이 회사 방문객들은 고급 스위스 초콜릿을 선물로 받는데, 적정 온도가 유지되는 목재 상자에 담겨있다.
목가적인 환경 덕분에 글렌코어는 수 십 년간 조심스럽게 베일을 속에서 세계 최대-일부 사람들은 매우 ’악명‘ 높다고 말한다-규모의 천연자원 사업 중 하나를 일굴 수 있었다. 2015년 매출은 1,705억 달러였다. 올해 포춘 글로벌 500 대 기업 순위 14위로 오르는데 충분할 만큼 놀라운 실적이었다. AT&T, 셰브론, 그리고 제너럴 일렉트릭처럼 친숙한 기업들보다 더 높은 순위다. 글렌코어의 사업 스케일은 다른 기업들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커 보인다.
현재 글렌코어가 채굴해 운반하는 원자재들은 인터넷으로 연결된(Connected)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쓰이고 있다. 휴대폰을 충전하고, 컴퓨터 전원과 전등 스위치를 켜고, 자동차, 기차 그리고 비행기를 운전하고, 시리얼이나 회 한 접시를 먹거나 설탕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는 모든 활동들이 글렌코어와 연관이 있다. 이 회사는 콜럼비아, 호주, 페루, 네덜란드, 그리고 기타 지역에 있는 창고 및 항만 시설을 이용한다. 지난 7월 기준 이 회사 소속 700대의 선박-대부분은 임대 선박이다-은 미국 해군의 함정 수를 능가한다. 수십 개 국가에서 12종류의 광물을 채굴, 운반, 판매까지 하는 유일한 대기업이다. 카길 Cargil, 리오 틴토 Rio Tinto, 비에이치피 빌리턴 BHP Billiton 등 경쟁사들은 이 가운데 일부 사업만 영위하고 있다.
글렌코어의 사업 모델은 전통적인 중개업이다: 바르 본사의 추진력 있고 야심 찬 트레이더들이 연간 수 백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그들은 운반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판매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킬로, 톤, 그리고 배 한 척당 붙는 마진은 적지만, 효과적인 전달방법으로 고객들에게 대량 판매를 하고 있다. 폴 가이트 Paul Gait 런던 주재 번스타인 투자 경영 연구소(Bernstein Investment Research and Management)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는 세계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 세계는 항상 원자재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불변의 진리”라고 설명했다.
이 거대 왕국의 설계자는 올해 59세인 억만장자 이반 글라센버그 Ivan Glasenberg 최고경영자다. 레이저처럼 예리한 남아공 출신의 그는 평생 글렌코어에서만 근무해왔다. 한 때는 자전거 마라톤 선수이자 실력있는 경보 선수이기도 했다. 2002년 글렌코어 CEO 자리에 오른 후, 글라센버그는 사업 영역을 은밀하게 확장하며, 북극권에서 호주 사막까지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글라센버그의 회사는 2000년부터 중국이 주도한 장기 원자재 호황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였다. 석유, 철광석 그리고 아연까지 모든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고, 자본 투자가 이어졌다. 그러나 2014년부터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자, 상승 분을 모두 반납하는 큰 타격을 입었다.
2015년 가을, 일부 투자자들은 글렌코어의 심각한 부채 규모에 주목했고, 빚 청산 능력에 대한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 주가가 곤두박질치며 한 순간 2011년 공모가 대비 87%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글라센버그는 거의 매일 오전 5시에 기상하고, 회사로 가기 전 30마일씩 자전거를 타는 등 자기 관리에 매우 철저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투자업계를 대상으로, 한때 난공불략의 왕국이었던 글렌코어의 파산 가능성을 부인하는데 급급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자산 매각을 통한 부채 감축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주가가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지금도 최고점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다.
평소와 달리 글라센버그는 외부 공개에 대한 거부감을 접고, 포춘에 회사 내부를 엿볼 기회를 제공했다. 더욱 특이한 건 회사 발전에 관한 포괄적인 개인 의견까지 보여줬다는 점이다. 2013년 이후 처음으로 비실적 시즌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글렌코어의 주식 매도세를 ‘죽음에 가까운 경험’이라기 보단 원자재 시장의 정상적인 경기 하락기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반응이라 진단했다.
글라센버그는 바르 본사의 조용한 회의실에 앉아 “글렌코어는 매우 깊은 침체기에 빠졌다. 그런데 원자재 경기 사이클이란 게 원래 그렇다. 이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고 차분히 말했다.
그러나 세계는 최근처럼 대규모로 장기간 계속된 원자재 시장의 불황을 경험한 적이 없다. 문제는 ‘원자재 호황이 끝난 지금, 글렌코어의 사업 전략이 무엇인가’이다.
회사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글렌코어는 불가피하게 의혹의 대상이 되었다. 수 년간 글렌코어의 감시자-대부분 시민 운동가와 비정부단체들이다-들은 이 회사가 주로 부패가 심각한 나라에서 정치적 관계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글라센버그는 이런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오히려 그는 글렌코어가 진출한 나라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글렌코어는 아마도 이런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회사의 탄생 스토리부터 논란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글렌코어는 막 리치 Marc Rich 라는 사업 수완이 매우 뛰어난 무역가의 원자재 거래 회사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1970년대 석유 거래에서 스폿 프라이싱 Spot Pricing-원자재 거래에서 선물 가격이 아닌 현물 가격을 적용한 것-이라는 기막힌 개념을 만들어냈다. 1983년 미국 정부는 탈세와 공갈, 그리고 미국 인질 위기 동안 이란과 석유 거래를 한 혐의, 인종차별 정책을 폈던 남아공에게 석유를 판매하는 등 적국과 거래를 한 혐의 등을 들어 리치를 기소했다. 그 후 리치는 스위스로 달아났고, 1994년 글라센버그와 다른 고위 임원들이 6억 달러로 추정되는 금액을 주고 그를 회사에서 손 떼게 했다. 그리고 나서 회사 이름이 글렌코어로 바뀌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2001년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에 그를 사면했다. 미 정가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지나간 일이다. 회사 소개 브로셔에도 이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내부자들은 회사의 열정적인 트레이딩 문화, 비교적 수평적인 계급 구조 (직원들은 최고경영자를 “이반”이라 부른다), 그리고 젊은 트레이더들의 대규모 결정에 대한 보상 제도 등이 리치의 유산이라고 느끼고 있다. 글렌코어는 갓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직원들을 고용해 그들 대부분이 평생 일하도록 만들고 있다. 내부에서 사람을 키우는 기업 문화 덕분에 형식보단 ‘소매를 걷어 올려 일하는 투지’와 자기 자랑보단 ‘신중함’이 더욱 강조된다.
그 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유산은 글라센버그 자신이다. 1984년 리치가 USC MBA 출신인 그를 채용해 아시아의 석탄 트레이더로 키웠다. 글라센버그는 글렌코어의 홍콩 및 베이징 사무소를 책임지고 난 뒤 1990년 글렌코어의 석탄부문 사업장으로 승진했다.
수 십 년 동안 대중의 관심을 회피했던 글렌코어가 2011년 5월 기업 공개를 통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100억 달러의 자금 유입으로 글렌코어의 기업 가치는 600억 달러로 상승했다. 글렌코어는 지금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한 IPO 기업들 중 최대어로 남아 있다. 이 회사는 홍콩증권거래소에도 상장돼 있다. 당시 1,634 페이지에 달하는 투자 설명서는 투자자들을 열광시켰다. 글렌코어는 ‘이용 가능한 시장(Addressable Market)’-세계 원자재 시장 중 제3 매수자와 매도자에게 개방된 시장으로, 그 규모는 전체 시장의 50% 미만이다-에서 아연 채굴 및 트레이딩의 60%를 점유하고, 구리와 납도 각각 50%, 45%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글렌코어는 대량의 곡류와 콩도 생산하고 거래한다. 적도 기니 Equatorial Guinea, 카메룬 Cameroon, 그리고 차드 Chad의 석유 및 가스 채굴권과 러시아 에너지 대기업 루스네프트 Russneft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글렌코어는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주요 자산 인수에 필요한 현금을 IPO를 통해 확보했다. 글라센버그를 포함한 일부 임원들도 억만장자가 됐다. 고위 임원들이 글렌코어 지분 가운데 3분 1 정도를 갖고 있었다. 현재 글라센버그는 글렌코어 지분 8%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2014년에만 배당금으로 1억 9,800만 달러를 챙겼다. 기업 공개 때 그는 4억 2,000만 달러의 세금을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스위스 도시 뤼슐린콘 R?schlikon에 납부했다. 그 덕분에 지역 공무원들은 주민 2명 중 1명 꼴로 엄청난 세제 혜택을 줄 수 있었다.
2013년 글라센버그는 글렌코어의 획기적인 인수를 이끌었다. 글렌코어가 설립했던 스위스 거대 광산기업 엑스트라타 Xstrata의 나머지 지분 60%를 매입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글라센버그는 채굴에서 최종 제품까지 원자재의 전 부문을 총괄하는 거대 기업의 수장에 오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글렌코어는 한 사업에서의 손실을 다른 사업의 이익으로 메울 수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그리고 2014년 기준 총 매출 규모가 2,210억 달러에 이르면서, 지난해 포춘 글로벌 500 순위 10위로 오를 수 있었다. 글라센버그의 질주 본능은 제동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아찔한 상승세도 결국엔 냉혹한 현실과 충돌하게 마련이다. 전세계 알루미늄, 구리, 니켈, 아연의 자그마치 50%를 소비하는 중국의 등장으로, 글렌코어의 성장은 힘을 받았다. 중국의 지칠지 모르는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글렌코어는 2000년대에 신규 광산 개발 및 생산 증대에 1조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이로 인해 세계 원자재 공급량은 급증했다. 그러나 작년 8월 원자재 호황이 멈추면서 공포심이 커졌다.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서자 중국 경제 성장이 예상보다 더 많이 느려졌는 것을 인정하는 신호로 인식돼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월가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바르 본사의 트레이더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2008년 금융 위기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고객들이 주문을 취소했기 때문에 글렌코어 배들은 해상에서 놀고 있어야 했다. 당시에는 세계가 위험천만하게 비정상인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중국이 예전보다 구매량을 줄였지만, 여전히 많은 양의 원자재를 사들이고 있다.
2008년과 달라진 점은 또 있다. 현재 글렌코어가 상장 회사라는 점이다. 그러나 글라센버그의 ‘차분한’ 대응은 신속한 행동-즉각적으로 그를 압박했던 요구-을 원했던 투자자들의 격한 불안감 해소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만약 비상장 기업이었다면, ‘당신이 뭐라고 해도 신경 안 쓴다. 우리가 알아서 처리한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장 기업에선 그런 생각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가 9월 28일 현실화로 나타났다. 런던의 자산관리회사 인베스텍 Investec이 고객들에게 ‘버뮤다 삼각지’ 라는 불길한 제목의 보고서를 메일로 보냈다. 이 보고서는 글렌코어, 앵글로 아메리칸, 비에치피 빌리턴, 리오 틴토 같은 주요 광산 회사들이 중국의 호황 기간 동안 ‘싼 빚을 잔뜩 얻었고’ 지금은 자산가치보다 더 많은 빚을 안고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 보고서는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오르지 않아 광산 회사들이 예산 균형을 맞추지 못한다면, ‘글렌코어와 앵글로 아메리칸의 거의 모든 자산 가치는 수증기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지진처럼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당일 글렌코어 주가는 29% 폭락했다. 다음 날까지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결국 공모가 대비 형편없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공포심리는 확산됐다. 한 뉴욕 애널리스트는 CNBC에 출연해 ‘글렌코어가 리만 브라더스-이 파산한 기업의 추락으로 세계의 금융 위기가 초래됐다-와 유사하다’고 표현 하기로 했다.
글렌코어의 부채-시장 판매가 가능한 재고 가치 150억 달러를 제외한 ‘순 부채’-는 296억 달러였다. 글렌코어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부채 규모라고 생각했지만, 투자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에 따라 글렌코어는 순 부채 규모를 올해 말까지 180억 달러 낮추는 전략을 세우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그와 고위 임원진은 25억 달러의 사재를 출연했다; 글라센버그 혼자서만 2억 1,000억 달러를 내놓았다. 그들은 또 25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올해 배당금 수령을 포기하기로 동의했다.
글라센버그는 8월 말 8일 간의 투자 설명회 ‘로드쇼’를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글렌코어에겐 문제가 없으며, 중국의 성장률도 회복될 것이라는 점을 투자자에게 재확인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그는 글렌코어가 여전히 연간 30억 달러의 잉여현금(Free Cash)을 쌓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럼에도 글라센버그는 자산 매각 계획을 지속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6월 글렌코어는 농업 부문 지분의 50%를 31억 달러를 받고 캐나다 연기금 2곳에 매각했다. 호주의 철도 인프라 사업과 카자흐스탄의 금광도 시장에 내놓았다.
현재 글렌코어의 최고경영자는 원자재 산업이 세계 시장 원자재 과잉 공급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광산 회사들이 생산량을 조절할 수만 있다면, 가격은 필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산 회사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공급 확대를 멈추고 수요를 살펴야 한다. 그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쿠퍼벨트 Copperbelt를 둘러보면, 글렌코어가 단일 기업으로 얼마나 대단한지 금방 눈치를 챌 것이다. 글렌코어는 2011년 콩고 최남단 카탕가 Katanga주의 작은 콜웨지 Kolwezi 공항의 작은 활주로 재개발과 건물 신축 과정에서 비용을 부담했다. 무탄다 구리 광산으로 가는 길에, 우리 차량은 루알라바 강 Lualaba River을 건너기 위해 새로운 다리를 지나갔다. 글렌코어는 이 다리 건설에도 1,000만 달러를 투입했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중심부에 위치한 콩고는 ‘자원의 저주’-대규모 광물 자원을 가진 나라들이 만연한 부패와 갈등에 빠지는 현상-가 적용되는 나라다. 콩고는 주석, 코발트, 구리, 다이아몬드, 금, 그리고 다른 광물 다수를 보유하고 있다. 유엔 발전 순위에서 188개국 중 176위를 차지한 콩고는 평균 수명 57세, 연 평균 수입 446달러에 불과한 나라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내전 때문에 수십 만 명이 사망했다. 수도 킨샤사 Kinshasa에서 800마일 떨어진 카탕가 주민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이 크다. 구리가 채굴되는 카탕가에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글렌코어의 무탄다 구리 광산 출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내부는 잘 정돈된 하이테크 시설로 빛나고, 최대 생산성에 맞춰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최신식 장비가 시설의 새로움을 더해준다. (인수 합병을 선호하는) 평소 스타일과 달리, 글렌코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처음부터 무탄다를 만들었다. 9년이 지난 지금, 연간 22만 미터톤의 구리와 2만 5,000톤의 코발트가 생산되고 있다. ‘안전 장비 착용은 필수, 음주는 해고에 해당하는 위법행위’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 5,000명의 직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글렌코어는 회사 근처에 직원 자녀를 위한 학교도 설립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지역 주민들이 자사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숙련공들은 8주씩 단지 내 별장에 머물며, 널찍한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글렌코어가 콩고에서 진행한 일련의 거래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거대 광산업체 글렌코어는 2007년 2억 달러를 투자해 무탄다 지분을 인수했고, 곧바로 4억 2,00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입해 2012년 대주주 지분을 확보했다. 지금은 지분 69%를 보유 중이다. 콜웨지 마을에서 26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글렌코어는 2008년에 토론토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인 카탕가 마이닝 Katanga Mining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글렌코어가 적은 지분을 보유했던 한 회사가 오히려 카탕가 마이닝을 인수합병했다.
2012년 5월 글렌코어가 바르 근처의 한 카지노에서 첫 번째 연례회의 개최를 준비하고 있을 때, 런던에 본사를 둔 반부패 비정부단체 ‘지구의 증인’ (Global Witness·이하 GW)이 주주들에게 충격적인 보고서를 메일로 보냈다. 그 보고서는 ‘최근 글렌코어의 콩고 내 인수 거래들이 불투명한 방식으로 체결됐다’고 주장했다.
그 보고서가 제기한 의혹은 ‘왜 글렌코어가 2011년 3월 국영광물회사인 제카마인스 Gecamines로부터 무탄다의 잔여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했느냐’는 것이었다. GW 주장에 따르면, 글렌코어는 잔여 지분을 댄 게틀러 Dan Gertler가 소유한 페이퍼 회사에게 매각해 달라고 콩고 정부에 요청했다. 조셉 카빌라 Joseph Kabila 콩고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였던 이스라엘 사업가 게틀러는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개인 회사 플뢰레트 그룹 Fleurette Group을 통해 지금도 무탄다 지분 31%를 보유하고 있다. GW는 게틀러가 ‘단돈’ 1억 2,000만 달러로 고품질 구리 매장량을 손에 넣었다고 주장했다. 글렌코어 IPO 당시 20% 지분 가치가 8억 4,900만 달러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참 낮은 가격에 인수한 셈이었다. 이 수치는 글렌코어 IPO에 참여한 외부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가치 계산에 근거한 것이었다.
GW의 의혹-입증되지는 않았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그 돈의 일부가 게틀러의 친구였던 카빌라 대통령에 흘러 갔을 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둘째, 채굴을 위해 게틀러에게 글렌코어의 든든한 자금 지원이 필요했던 것처럼, 글렌코어 역시 정부에 줄을 대기 위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니얼 발린트 커티 Daniel Balint-Kurti GW 원자재 연구원은 “게틀러가 콩고의 가장 가치 있는 자산(Crown Jewel)에 쉽게 무임승차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글라센버그와 글렌코어의 임원진은 GW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해왔다. 글라센버그는 두 번이나 GW를 바르 본사로 초대해 직접 해명을 했다. 게틀러에게 제공된 대출은 큰 금액이 오가는 원자재 업계에서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며, 광물 자원도 낮은 가격에 구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게틀러도 콩고 기업을 적정 가격 이하로 인수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부패 거래’ 의혹과 관련해, 글라센버그는 필자에게 “왜 우리가 그렇게 싼 가격에 매수했냐고?”라고 자문한 뒤 “현재 구리 가격을 기준으로 절대로 싼 가격이 아니었다”고 자답했다. 모든 다른 거래처럼, 무탄다의 실제 가치가 구체화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적정 가격을 지불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마도 10년 뒤에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하면 10년 후에 삼페인을 터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GW의 발린트 커티는 “우리의 주장이 옳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같은 비난 속에서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 현대 사회의 지속적인 작동에 필요한 광물을 캐고, 이를 수 많은 국경을 거쳐 해저터널로 수백 마일 운반하는데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회사는 극소수다. 무탄다를 예로 들어보자. 이 가난하고 무기력한 국가는 광물을 이용할 수단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일부 글로벌 광산 회사들도 콩고 내 사업을 기피해왔다. 미국 회사 프리포트 맥모란 Freeport McMoRan도 지난 5월 거대한 텐케 풍구르메 Tenke Fungurume 구리 광산을 중국 몰리 Moly사에 매각하고 그곳을 떠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글렌코어는 풍부한 아프리카 경험과 위험에 대한 배짱을 가지고 있다. 이 회사는 콩고에 대략 55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식수와 전기처럼 광산에 필수적인 인프라도 포함되어 있다. 콩고 일반인들도 그것으로부터 큰 혜택을 받고 있다. 글라센버그는 “땅 속에 있는 광석 매장량은 꺼내 쓰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들은 우리가 와서 개발하기를 원한다. 매장량에 대해 얼마를 지불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고 설명했다.
무탄다 국경을 너머 도착한 잠비아도 상황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콩고와 달리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잠비아는 대부분의 통치 기간 동안 내전 없이 잘 정비된 정부를 존속시켜 왔다. 하지만 광산에 관해 콩고와 잠비아는 비슷한 슬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양국 모두 독립 이후 다국적 기업들이 운영했던 구리 광산에 대한 대주주 지분을 되찾았다. 하지만 장기간의 정부 통제 하에서 샤프트와 리그 같은 채굴 장비들이 지속적으로 파손됐다.
2000년 당시 잠비아는 연간 30만 톤 미만을 생산하고 있었다. 50년 전 생산량의 반토막 수준이었다. 현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잠비아는 광산을 매각했다. 글렌코어가 인수전에 뛰어들어 2000년 2개의 대형 광산을 사들였다. 당시 매입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때마침 중국의 원자재 호황이 시작됐던 시점이었다. 글렌코어는 아프리카의 상징적인 나무 이름을 따서 광산 이름을 모파니 쿠퍼 마인즈 Mopani Copper Mines로 바꾸었다.
글렌코어는 녹슨 샤프트와 장기간 채굴 때문에 고갈된 광물 상층부를 발견했다. 회사는 신중한 선택을 해야 했다: 수십억 달러를 들여 새롭고 더 긴 샤프트를 투입할지, 아니면 문을 닫고 잠비아를 떠날지 고민해야 했다. 글렌코어는 3개의 샤프트를 새로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 중 2개는 지하 1마일 이상 팔 수 있는 장비로, 총 비용은 대략 11억 달러였다.
글렌코어는 다른 방식으로도 상당한 투자를 감행했다. 2,100만 달러를 들여 1만 4,000여 명 직원들을 위한 교육 센터를 건립하기도 했다. 말라리아 예방 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2개의 병원과 4개의 학교도 새로 지었다. 남아공의 글라센버그로 알려진 모파니 최고경영자 요한 얀센 Johan Jansen은 “글렌코어가 장기적 관점에서 잠비아에서 사업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글라센버그는 글렌코어가 상장 기업으로 오래 버티기 위해선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올해 내내 투자자들의 요구 사항을 계속 들어줘야 한다: 비용 통제 및 부채 감축이 그것이다. 그러는 동안, 글렌코어는 원자재 시장의 정상화를 기다려야 한다.
글렌코어는 지난해 9월 콩고의 ‘카탕가 마이닝’ 운영을 중단했다. 약 1,400명의 직원들이 떠났고, 4,000명은 남아서 내년 말 광산이 다시 오픈 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폐쇄된 광산을 유지 보수하는 과정에서 지난 3월 안타깝게도 일곱 명이 산사태로 사망했다. 글렌코어는 광산 폐쇄는 부채 감축안의 일부분이 아니고, 노후 시설 업그레이드 차원의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구리 가격이 하락한 상황은 광산 보수에 적기라 할 수 있다.
인내심이 필요한 건 잠비아도 마찬가지다. 글렌코어 임원진은 원자재 산업의 호황을 기다리고 있다. 모파니 최고경영자 얀센은 ”원자재는 경기 사이클을 타기 때문에 다시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모파니가 더 많은 구리를 팔 수 있을 것이다. 경쟁사들이 감축할 때 오히려 더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라센버그는 그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세계가 원자재를 요구할 때, 글렌코어는 생산할 채비를 마쳤을 것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VIVIENNE WALT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