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가 각종 규제를 양산하고 기업의 체력을 약화시켜 오히려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등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투자·고용·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경제 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라는 신간을 내놓았다. 신 교수는 지난해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할 당시 외국계 헤지펀드의 위험성을 경고해 재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신 교수는 저서에서 “한국 경제는 위기의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고 진단했다.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수출 부진, 늘어가는 가계부채, 양극화 심화 등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신 교수는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이유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찾았다. IMF 아래서 진행된 경제 민주화의 각종 규제정책이 오늘날 경제 위기의 원죄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IMF 당시 경제 위기의 원인을 대기업으로 지목하고 IMF 요구는 물론 경제 민주화 구호까지 내걸고 각종 규제정책을 쏟아냈다”며 “오늘날 재벌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순환출자가 대표적인 정부규제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을 궁지로 몰았던 규제는 기업의 체력을 약화시켰고 SK 소버린 사태, 엘리엇의 삼성물산 공격 사태를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또다시 경제 민주화라는 칼을 꺼내 기업을 옥죄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이 칼을 맞으면 영영 회생 불가능의 심연으로 빠질지 모른다”며 “규제로 점철된 경제 민주화보다 한국 경제의 허리를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 투자·고용·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재단을 통한 기업 승계를 허용해 재단 소속 기업을 ‘1·2부 리그 시스템’으로 운영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또 국내외 기관투자가에 대해서는 장기 투자를 유도하고 기업자산을 지나치게 뽑아가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관투자가는 ‘주주’가 아니라 ‘주관재인’으로 돈을 맡긴 원고객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해 투자하도록 하고 경영 업무를 수탁받은 경영진과 수평적 관계에서 협의를 해나가는 새로운 기업 권력 지형을 제시했다. 정부는 기업의 성장을 지원해주는 산업금융 시스템을 재구축해 한국 경제의 허리를 키우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경제 양극화를 해결하겠다고 내세운 경제 민주화가 오히려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경제 민주화에 대한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한국 경제의 성장·고용·분배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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