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중인 한진해운의 아시아~미주노선 영업망 인수를 위한 예비입찰에 참여하기로 했다. 애초 정부가 기대했던 대로 한진해운 알짜 자산을 현대상선이 가져오기 위한 시도지만 한진해운 영업 자산 가치가 법정관리 이후 이미 급격하게 훼손됐다는 점에서 현대상선이 정밀 실사 후 실제 본입찰까지 참여할 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지원 없이 현대상선 자체적으로는 인수 자금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추가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마당에 이제 와서 현대상선에 자금을 추가 투입하면 상당한 역풍(逆風)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한진해운 미주노선 인수를 위해 오는 28일 인수의향서(LOI) 접수를 마감하는 예비입찰에 참여하기로 했다. 법원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에 한해 실사를 허용키로 한 만큼 일단 예비입찰에 참여해 인수 적정성을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법원은 지난 14일 한진해운 아시아~미주노선 영업망에 대한 매각 공고를 낸 바 있다. 관련 자회사와 컨테이너선 일부, 물류 시스템 등이 매각 대상이다. 스위스 선사인 MSC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미국 LA 롱비치터미널 등 해외 터미널은 이번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상선 고위 관계자는 “한진해운 자산 가운데 인수를 검토할 만한 부분은 모두 들여다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당장 영업망을 보강할 수 있는 자산 외에도 장기적으로 해운 업황이 개선됐을 경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자산에 대해서도 폭넓게 인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북유럽과 지중해, 아프리카를 잇는 ‘허브’인 스페인 알헤시라스 터미널 지분이 대표적이다. 알헤시라스 터미널은 한진해운이 지분 25%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IBK투자증권-한국투자파트너스 컨소시엄과 지분 100%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이 세계 4위(점유율 7%)의 한진해운 아시아~미주노선 영업망을 가져온다면 남 부럽지 않은 영업 네트워크를 갖출 것으로 예상되지만 인수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일단 매각 대상의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운임이 바닥인 상황에서 현대상선이 굳이 한진해운 미주 노선을 인수할 필요성이 있을 지 의문”이라면서 “게다가 이미 한진해운 미주 노선은 핵심 인력 이탈 등으로 영업망이 많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인수 대금 마련도 문제다. 현대상선은 올 상반기 4,170억원의 영업 적자를 낸데다 운임 하락 등 업황 악화로 현금 흐름도 악화되고 있다. 채권단 지원 없이 자체 자금만으로는 인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수를 타진하는 것 자체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현대상선 자금 투입에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는 원칙으로 한진해운을 법정관리에 보냈는데 이제 와서 현대상선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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