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만 했는데 결국 차은택을 위한 것이었다니….”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은 말할 수 없는 허탈함에 휩싸여 있다. 이른바 ‘최순실·차은택 게이트’를 통해 그동안 모호했던 사건들이 설명 가능해지면서 일각에서는 분노의 기운까지 감지되고 있다.
올해 2월 박민권 문체부 제1차관이 취임 1년만에 경질될 때부터 아주 이상했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프랑스 장식미술전’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를 당시 김영나 관장이 거부하면서 연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제 와서 보니 최순실씨와 관련이 있었다. 당시 전시 담당의 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은 공교롭게도 노태강 전 체육국장으로 2013년 최순실씨 딸이 연관된 승마협회 감사를 진행했다가 박 대통령에 의해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는 인물이다. 노 전 국장의 불똥이 박 차관에게 떨어진 셈이다. 이어 2015년 4월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의 중도사퇴도 미스터리였으나 당시 차은택씨와 밀라노엑스포 문제로 충돌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차씨가 김종덕 전 장관과 각별한 관계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문체부는 최근의 미르·K스포츠 재단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더욱 혼미에 빠졌다. ‘최순실·차은택 게이트’에 대한 실체가 하나하나씩 드러나면서 “다소 일 처리가 정상적이지 않았지만 크게 문제가 없다고 봤는데 다른 숨겨진 스토리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문체부 내 경직된 분위기는 사실 연원이 깊다. 노 전 체육국장의 좌천성 인사에 대해 김 전 장관이 취임 직후인 지난 2014년 12월 “업무능력이 떨어져 인사조치가 적절했다”고 말하면서라고 한다. 이는 조직에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무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청와대의 의지가 그렇다면 문체부가 다른 사고를 할 여지는 없었다는 변명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비선 실세’에 엮인 문체부가 잘못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은 국민을 바라보고 일해야 할 공복(公僕)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주말 잇따라 직원들이 소환돼 조사를 받는 등 검찰수사가 본격화하면서 후폭풍이 커질 것이 우려되지만 있는 그대로를 낱낱이 밝히고 다시는 ‘권력 사유화’라는 논란이 그 어떤 정권에서도 가능하지 않도록 전례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융성’이라는 과업이다. 국가경제를 살리고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문화융성은 국민을 위한 책무이지, 몇몇 권력 실세에 대한 영합 수단일 수 없다. 문체부의 존재 이유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융성 정책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지금 조윤선 장관의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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