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산증인이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이 오늘날 가입자 2,173만명, 수급자 412만명에 이르는 노후소득보장제도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사실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별로 없다. 문 이사장은 크게는 1~2차 연금개혁에서부터 작게는 두루누리, 실업크레딧, 추후납부제도, 기초연금 시행 등의 프로젝트를 안팎에서 주도했다.
어떤 계기로 연금에 뛰어들게 됐는지를 물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 재정학을 공부하러 갔는데 책을 보다 보니 소셜시큐리티(사회보장연금)라는 재미있는 제도가 있는 겁니다. ‘우와 이런 게 다 있네’ 하며 공부해서 한국 가서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1989년 한국에 돌아와 보니 나갈 때는 없었던 제도가 이미 도입돼 있는 겁니다.”
문 이사장은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제도를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부정적인 놀라움을 느꼈다. “장기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만들었더라고요. 보험료와 급여 수준이 균형이 안 맞았습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연금개혁에 동참했습니다.”
70%인 소득대체율을 60%로 떨어뜨리고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1997년 1차 연금개혁은 당시 청와대 보건복지행정관이었던 그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됐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등이 외부에서 힘을 보탰다. 2007년 참여정부 때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면서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춘 2차 연금개혁 때는 외부에서 지원사격을 했다. 문 이사장은 “1차 때는 다행히 당시의 청와대가 제안을 받아줬다”며 “2차 때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유 전 장관이 총대를 메고 결정을 내려줬고 나는 밖에서 힘을 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더 이상의 소득대체율 축소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국민연금과 관련된 각종 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복지부 장관 등을 지내면서 그보다는 사각지대 해소, 가입 기간 확대 등에 힘을 쏟았다. “KDI에 있을 때 두루누리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전업주부 추납제도도 그 당시 연구를 했던 사안입니다. 복지부에 있을 때는 기초연금을 도입한 것도 있고요. 실업크레딧도 당시 야당 의원들에게 제안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에게 임기 내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물었다. “크게 네 가지입니다. 먼저 (국민연금을 가입하지 않는 국민 등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주력할 것입니다. 또 힘들더라도 국민연금이 재정 면에서 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은 기금운용의 역량 강화이고요. 마지막이 국민연금의 세계화입니다. 몸은 전주에 있지만 눈은 세계로 둬야 합니다. 국민연금 미래화의 핵심은 스마트오피스가 될 것입니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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