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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PD의 Cinessay-죽여주는 여자] 인간답게 산다는 건...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노라면, 어제까지도 그렇게 중요했던 이 세상 모든 일들이 부질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집값이 얼마나 오르고, 회사에서 승진이 어떻고, 자식이 공부를 잘하네 못하네, 나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던 것들은 내가 건강하고 내 의지대로 뭔가를 할 수 있을 때 해당되는 것이니까요. 천년만년 살 것처럼 모으고 싸우고 치열하게 살지만, 우리는 사실 너무도 나약한 존재입니다. 조금만 아파도 무기력해지는데 언젠가 늙고 병들어 죽음만 기다리고 있을 때는 어떤 심정일까요. 생각만 해도 두렵습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이렇게 힘겨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진정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일명 박카스아줌마 소영(윤여정)은 ‘죽여주게’ 잘한다는 입소문이 날 만큼 인기가 있습니다. 6·25전쟁 즈음에 태어나 식모로, 여공으로, 미군부대로 전전하다 ‘할머니’소리를 들을 때까지 몸을 파는 파란만장한 인생이지만 운명에 순응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위험에 처한 코피노소년 민호를 보고는 무작정 집으로 데려옵니다.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키우지 못하고 입양보낸 죄책감에 시달리던 소영으로서는 민호에게 아들의 모습을 봤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서 요동을 치죠. 정성껏 민호를 돌보며 나름 평화롭게 살던 소영에게 옛 지인 재우(전무송)가 나타나면서 그녀는 정말로 ‘죽여주는’일을 하게 되니까요. 아무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옛고객 송노인, 병마와 싸우는 가난한 또 다른 노인 그리고 재우까지. 소영은 그들의 죽음을 도와주게 됩니다. 상황만 다를뿐 산전수전 다 겪은 소영으로서는 그들의 고통과 고독을 완벽하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속사정이 있겠지’ 소영은 담담하게 다른 사람의 인생에 공감해줍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범죄지만 과연 누가 소영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요.



노인 성매매, 죽음……. 주제어만 들어도 불편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따뜻합니다. 등장인물들 때문입니다. 소영의 집주인이자 트렌스젠더인 티나(안아주), 피규어를 만드는 장애청년 도훈(윤계상)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고 함께 민호를 돌봐줍니다. 소영을 ‘늘 후하고 점잖게 대해줬다’는 송노인은 비참한 소영에게 잠시나마 따뜻함을 느끼게 해줬을 겁니다. 재우 역시 끝까지 소영에게 예의를 갖춥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가 외면한 그들이 실제로는 누구보다 더 인간답게 살고있는 겁니다. 소영이 그저 평범한 부모만 만났더라도, 어떻게든 공부만 할 수 있었더라도, 미군부대에서 만난 남자가 책임감만 있었더라도. 삶의 고비고비마다 조금만 운이 있었어도 ‘무연고자’로 쓸쓸하게 감옥에서 죽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깝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소영이를 도울 수는 없겠지만 외면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가난한 소영이 재우에게 받은 사례비에서 이웃들과 저녁 한끼 먹을 돈만 빼고 시주함에 넣는 장면을 보며 나는 얼마나 더 많이 통장을 채워야 만족을 할까 부끄러웠습니다. 한평생 무시와 착취, 고통만 받았으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준 소영 할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KBS 1라디오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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