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HP는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매출액 118억달러(약 13조원), 영업이익 12억달러(약 1조3,600억원)를 기록했다. 매출은 퍼스널시스템 부문이 75억달러로 가장 많았고 프린팅 사업 부문이 44억달러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프린팅 사업 부문이 9억달러로 퍼스널시스템(3억3,000만달러)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프린터 사업부가 HP의 핵심 사업부로 부각되는 이유다.
# 삼성전자 프린팅솔루션 사업부 임직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삼성전자에 분사 조건으로 △1인당 위로금 세전 2억5,800만원 지급(세후 1억5,000만원) △정기상여 1,600% 신설 및 성과급 별도 지급 △60세 정년까지 고용 보장을 요구했다. 과거 삼성이 매각한 탈레스와 테크윈 임직원들에게는 4,000만~6,000만원의 위로금이 지급된 것을 고려하면 약 3배 가까이 돈을 더 달라는 상황이다. 특히 1년치 연봉 수준의 정기 상여금을 신설해 사실상 회사 분할 이후 급여를 2배로 올려달라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HP에 매각을 진행 중인 프린팅 솔루션 사업부의 요구가 지나치게 무리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프린팅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는 HP와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 재평가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프린팅 솔루션 사업부 비상대책위원회는 총 6차례 이상에 걸쳐 위로금과 처우 개선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회사 분할 시점인 11월1일을 6일 앞둔 상황이지만 논의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양쪽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는 것은 비대위의 요구사항들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HP의 매각계약에 5년 고용 보장을 명기화하고 있지만 비대위 측이 삼성전자 대표이사 명의의 5년 고용 보장 및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연말 성과급(OPI)으로 연봉의 최대 50%를 지급해달라는 요구는 삼성전자 평균 이상에 지난 2년간 프린팅 사업부가 2~3%대를 받은 것과 비교해도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삼성’이라는 최고 우량기업에서 이탈되는 상실감과 울타리가 바뀐 후 직업 안정성 등이 훼손되는 상황 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느냐는 얘기다. 다만 비대위에서는 “매각되는 입장에서 삼성전자에 요구할 수 있는 모든 의견을 제시했다”며 “특히 5년 고용 보장 문서화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프린팅 사업부가 세계 1위 프린터 기업인 HP로 매각된 후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상황인 점이 전혀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HP는 컬러 복합기 사업에 있어 영업망과 서비스망을 갖췄지만 독자적인 기술력 부재로 주문자위탁생산(OEM) 방식으로만 사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향후 삼성전자 프린팅 솔루션 사업부를 인수하면 레이저 프린터 시장에서 큰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실제로 HP는 삼성전자 프린팅 사업부 임직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강력한 프린팅 회사 만들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지난달 27일 엔리크 로레스 HP 사장은 매각 설명회에서 “양사가 함께 협업해 서로 성장하고 강력한 프린팅 회사를 만들고 싶다”며 “우리는 모든 삼성 직원을 원하고 5년, 10년 앞으로 어떻게 되든 비자발적 해고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달 12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HP의 글로벌 파트너 컨퍼런스에서 디온 웨이슬러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 프린터 사업부 인수를 통해 550억달러 규모의 복사기 업계에 도전한다”며 “압도적인 효율성과 보안력, 합리적인 가격대에 완전히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HP의 삼성전자 프린팅 사업부 인수는 캐논과 리코 등이 주도하던 레이저 프린팅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며 “마치 삼성전자 프린팅 사업부가 헐값에 팔려가는 것과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고 평가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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