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이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꼭 한 달이다. 직접 적용 대상자와 배우자 등을 포함해 최대 2,000만명이 영향을 받는 실험이었지만 급격한 소비위축은 없었고 국민들의 생활 불편 등도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법 해석을 놓고는 정부 부처끼리도 엇갈리며 혼란스럽고 대학 재학생의 취업 금지 등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도 속출해 혼선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최순실 사태’처럼 공직사회가 아닌 민간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부정청탁을 막지는 못하면서 카네이션·캔커피 등 일상적인 행위를 금지하는 현실이 법의 본래 취지와 맞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판 1호 떡 수수 사건 놓고 경찰청 vs 권익위 해석 엇갈려=청탁금지법 시행 전 가장 큰 우려는 접대 문화에 기댄 민간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3·4분기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가 67.51로 전 분기 70.55보다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선물접대로 많이 팔리던 한우와 홍삼의 매출도 30% 떨어지고 화훼농가도 이달 들어 거래 물량이 전년보다 22% 줄었다.
다만 내수 전반에 큰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는 진단이 다수다. 3만원 이하로 접대하는 사례가 늘고 개인 소비가 늘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타격이 크지는 않다는 것이다. 골프장 역시 접대에 활용하는 소수의 회원제를 제외한 수도권의 대중 골프장은 평일에도 예약이 꽉 찰 정도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접대문화에서 비롯한 불필요한 거품이 일부 빠지는 과정인 것 같다”면서 “호텔이나 고급식당 등의 소비는 줄었지만 중저가 업종의 소비가 늘면서 전체 소비가 크게 하락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법의 정확한 내용이 아직도 오리무중이라는 사실이다. ‘재판 1호’로 기록된 4만5,000원 떡 수수 사건은 부처 간 해석이 엇갈린다. 경찰관에게 4만5,000원짜리 떡 한 상자를 보낸 민원인을 신고한 이 사건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떡 같은 경우는 사회상규 같은 것인데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경직된 해석이 나오니까 일선에서 부담스러워 해 신고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일반 여론 역시 4만5,000원짜리 떡 선물을 잡으라고 이 법을 지지한 게 아니라는 의견이 다수다. 그러나 권익위 관계자는 “경찰관과 민원인은 직접적 직무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실제 떡을 받거나 청탁을 받지 않았더라도 신고해야 한다”면서 경찰청과 반대로 해석했다. 권익위에는 현재까지 9,351건의 유권해석 요구가 쏟아졌지만 인력이 부족하고 법리판단이 필요하다며 1,570건만 답변했다.
◇취업계 금지 등 엉뚱한 부작용…대학 갈라파고스화 우려=대학가에서는 재학생 취업이나 산학협력 등 부정청탁과 관계없는 분야로 불똥이 튀었다. 재학생이 취업하면 출석 없이 학점을 인정하던 관행인 ‘취업계’는 고등교육법이나 각 대학 학칙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청탁에 해당한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각 대학에 학칙을 개정하도록 권고했으나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125개 대학 가운데 학칙을 개정한 곳은 26곳에 그친다.
청탁금지법이 대학교수의 외부 강의나 자문활동에 대한 수입 상한선을 최대 100만원 이하로 제한하면서 산학협력이 위축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전임 교수들이 외부 활동을 줄이고 대학 겸임교수로 일하던 기업 임직원도 교수직을 내놓는 것이다.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자가 외부와 접촉하지 않으면 현실을 모르는 상아탑 연구가 될 수밖에 없고 기업 역시 학계와 만나지 않으면 최근 이론이 뭔지 모른 채 연구개발을 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권익위, 직접적 직무 관련성 고집 풀고 혼란 해소해야=청탁금지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에도 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직접적 직무 관련성’을 고집하는 권익위의 과도한 법 해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직접적 직무 관련성에 따르면 교사와 학생은 항상 평가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카네이션 선물이 금지된다. 직접적 직무 관련성은 법학자를 중심으로 꾸린 권익위 내부 자문위원회에서 만든 개념이지만 법률에는 없는 개념이며 청탁금지법이 원용한 공무원 행동강령에도 나와 있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개인의 윤리를 법으로 규정한 곳은 주요 국가 어디에도 없다”면서 “그나마 법을 지킬 수 있게 규정해야 법이 안착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종=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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