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공백이 가시화하면서 국가 리더십의 부재가 가뜩이나 가파른 원화 약세를 더욱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뚜렷해진 외국인투자가들의 이탈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원40전 오른 1,144원90전에 마감했다. 지난달 30일 1,101원30전으로 1,100원대에 올라선 환율은 한 달 만에 45원 가까이 급등했다.
최근 달러는 미국의 연내 금리 인상 전망을 굳히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이날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ICE 달러화지수는 98.97로 지난 2월 이래 최고 수준에 육박했다. 5월 저점과 비교하면 7.7%나 오른 수치다.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05.35엔까지 올랐다. 엔·달러 환율이 105엔대에 진입한 것은 3개월 만이다. 중국 위안화 가치도 역외환율이 6.80위안선을 위협하며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9월 상품수지와 신규주택판매 등 경제지표들이 대체로 호조를 보인 가운데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6월 초 이래 최고치인 1.97%까지 오른 상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내 10년물 금리가 2%를 돌파하면서 달러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달러 강세가 공고하게 지속되는 가운데 원화 가치는 아시아 주요국 통화에 비해 빠르게 떨어지는 모습이다. 이달 들어 27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달러화 대비 2.76% 상승(원화 가치 하락)했다. 이는 싱가포르(1.92%), 중국(1.09%), 태국(1.04%), 말레이시아(0.64%)보다 폭이 크다.
외환시장에서는 국정 공백에 따른 정치적 혼란이 원화 환율 상승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아직 투자 익스포저를 조정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도 국내 정치 스캔들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민감한 분위기를 전했다. 가뜩이나 건설투자로 성장을 힘들게 떠받치는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폭되면 외국인투자가들이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던 2004년 3월12일 금융시장은 일대 패닉에 빠졌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이상 급등하며 1,180원을 돌파하자 평소 환율 하락을 막던 외환당국은 ‘달러 팔자(매도)’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금융시장의 충격은 단기적이었지만 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신경립·이연선기자 kls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