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는 가계부채, 기업 구조조정 등 일만 잔뜩 벌여놓고 (결정은) 미뤄왔습니다. 내년은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전직 청와대 관계자)
대통령 임기가 4분의1이나 남았지만 경제관료들이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각종 회의와 대책 발표를 앞뒀지만 내부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공무원들이 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쉽다”는 게 이들이 전하는 공직사회의 냉담한 분위기다. 최근 들어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상황도 자주 비교 대상에 오른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20주년 기념행사를 바라보는 공직자들의 눈길이 착잡한 이유다.
외환위기 전 우리나라 경제상황도 지표상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1995년 9.6%, 1996년 7.6% 등 성장률은 3%대인 세계 경제성장률에 비해 양호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995년 5월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한보를 시작으로 진로·기아·해태 등 국내 대기업의 부실이 줄줄이 드러나면서 이듬해인 1997년 결국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에 손을 내민다.
정부와 여당이 우리나라의 성장률과 신용등급 상향 조정을 근거로 경기 흐름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에 대해 경제주체들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도 20년 전 이러한 경험 때문이다. 일단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 일로다. 그나마 최근 2년간은 저유가 덕에 기업 매출이 줄어도 영업이익은 증가했지만 올해는 상당수 기업이 손에 남는 돈도 줄어든다. 30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3·4분기까지의 매출이 148조5,35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찔끔(0.8%) 늘어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갤럭시노트7 단종으로 1.2% 줄어든 20조199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자동차는 매출이 2.9%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3.8% 급감했다. LG디스플레이의 매출은 18조5,68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1.1%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4,071억원으로 무려 74%나 급감했다.
지난해부터 구조조정으로 ‘좀비기업’을 줄이겠다는 게 정부정책이었지만 효과도 미미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기업 경영 분석’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은행 빚을 갚지 못하는 기업(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수는 8만6,706개로 전체 기업의 31.5%에 달했다. 2014년(32.1%) 대비 찔끔(0.6%포인트) 낮아진 데 그쳤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석유·철강·조선·건설·해운 등 5대 취약산업의 생산이 10% 동시에 감소할 경우 부가가치가 19조6,0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내년 기준으로 우리 경제성장률이 1.1%포인트 떨어지는 수준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의 무게중심을 생산능력 축소가 아니라 주력산업군을 신산업으로 채우는 구조개편에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2014년 정부의 부동산규제 완화로 국민 상당수가 빚을 내 집을 산 상황에서 금리가 점점 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코픽스는 9월 신규 취급액 기준 1.35%로 전달보다 0.04%포인트 올랐다. 상승세로 전환한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만이다. 은행권 주담대 잔액의 약 60%가량은 시중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도 오르는 변동금리형이다. 시중금리가 오를 시 경제적 부담을 은행이 아닌 가계에 지우고 있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국민들이 하나둘씩 집을 팔 수밖에 없고 이런 현상이 확산되면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버블 붕괴’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은은 6월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가계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른다면 금융·실물자산을 다 처분해도 빚을 갚을 수 없는 부실위험가구가 6만가구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외에도 9월 실업률은 9월 기준으로 11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고 청년실업률도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청탁금지법도 내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수출 증감률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8월을 제외하고 모두 뒷걸음질(전년 대비)쳤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마비되는 등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릴 리도 만무하다.
/세종=이태규기자 김상훈기자 class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