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 경제인 포럼 행사장. 각 그룹 총수들이 모여 간담회를 진행한 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부축하면서 모습을 나타났다. 손 회장의 걸음이 다소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박 회장이 직접 나서 거동을 도운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본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이 올해 칠순인데 그 나이에 다른 이를 부축하는 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지 않느냐"며 "박 회장의 두터운 재계 내 인맥과 친분 관계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6일 금호산업 경영권(50%+1주)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조달 계획서를 산업은행에 제출하며 그룹 재건의 마지막 고비를 넘긴 박 회장의 뒤에는 대기업으로 구성된 백기사 연합이 있었다.
박 회장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대기업만도 LG·SK·롯데·한화·효성·코오롱·CJ·대상 등 줄 잡아 10곳에 육박한다.
이들 우군 연합은 박 회장과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시장에 내놓은 금호산업·금호타이어 지분을 매입하거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새로운 지주사가 되는 금호기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그룹 재건에 힘을 보탰다.
CJ가 금호기업에 500억원을 투자하며 대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효성과 코오롱도 지분 매입과 유상증자를 포함해 각각 200억원 가까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와 SK는 지분 매입에만 100억~200억원가량을 투입했다.
물론 이 같은 투자의 이면에는 냉정하게 득실을 따진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그룹을 대표해 지원에 나선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화학 계열사들은 금호타이어에 타이어 재료를 공급하는 계약관계로 맺어져 있다. SK에너지 역시 아시아나항공에 항공유를 납품하는 사이다. 이 밖에 현대해상·동부화재·한화손보 등은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과 다양한 보험상품 계약으로 엮여 있다.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해 금호기업의 주주가 된 효성과 코오롱 역시 화학 사업이 주력 업종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이나 금호타이어는 모두 해당 업종을 대표하는 회사들인데 이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투자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기업 간 이해 관계도 있지만 박 회장의 두터운 인맥에 더 큰 점수를 매겨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계열사들이 워크아웃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신용등급이 많이 낮아져 투자를 단행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손해보험회사는 막판까지 지분 매입 등 투자 여부를 고심하다 끝내 투자 요청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재무제표상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정성적 요인에서 그룹 재건의 열쇠를 찾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박 회장에게 결정적 도움을 준 손 회장은 아내가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박 회장의 아내와 동창이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은 박 회장의 매제로 혈연관계다. 또한 박 회장이 2008년부터 연세대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어 연대 상대 학맥이 그룹 재건에 상당한 힘이 됐다는 게 재계의 정설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박 회장이 재계는 물론 금융당국을 비롯한 정관계에 두터운 인맥이 있어 그동안 고비 고비를 넘어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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