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상 최대 규모의 국고채 매입에 나서면서 치솟던 장기시장 금리가 다소 진정됐다. 하지만 최근 환율이 더 치솟는 등 주식·채권·환율의 트리플 약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의 국고채 금리 상승 등으로 금리 인상 압력이 갈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어 한은이 추가 매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벌써부터 나온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012%포인트 내린 2.120%로 마감했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이후 1.671%(9일)에서 2.132%(18일)로 수직 상승했었다. 같은 기간 1.402%에서 1.736%로 급등했던 3년물 금리도 이날 0.011%포인트 내렸다. 다만 3년물과 10년물을 제외한 다른 국고채 금리는 상승세를 보이며 약세장을 이어갔다.
치솟던 장기금리를 끌어내린 것은 한은이었다. 이날 한은의 국고채 단순매입에서 총 1조2,700억원이 낙찰됐다. 응찰액은 1조9,700억원이었다. 한은은 이날 오후2시부터 10분간 진행한 경쟁입찰에서 지표물인 국고채 10년물 16-3호와 국고채 5년물 16-4호, 국고채 3년물 1-62호가 각각 1,700억원, 3,000억원, 5,000억원 등으로 총 9,700억원이 낙찰됐다고 발표했다.
비지표물인 국고채 20년물 13-8호와 국고채 10년물 14-5호, 국고채 5년물 15-1호는 각각 500억원, 1,500억원, 1,000억원 등 총 3,000억원이 전액 낙찰됐다.
한은이 지표물을 매입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8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김동원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내일 장까지 봐야 영향을 정확히 알 수는 있지만 금리를 누르는 효과는 있었다”며 “한은이 추가 매입도 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만큼 당분간 국고채 금리는 안정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은의 국고채 지표물 단순매입은 ‘극약 처방’에 가깝다. 통상 중앙은행은 대출 금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단기시장 금리를 관리하기 위해 환매조건부채권(7일물)이나 통화안정증권(91일물) 등 단기물을 통해 시중 금리를 관리한다. 통상 시장의 금리 기대를 반영하는 장기금리의 경우 적정 수준을 가늠하기 쉽지 않아 통화정책의 대상이 아니다. 장기시장 금리를 ‘타기팅’하는 중앙은행은 국채 무제한 매입을 통해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는 일본은행(BOJ)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일단 한은의 개입으로 치솟던 장기금리가 내림세로 돌아선 것은 다행이지만 미국의 장기금리가 추세적으로 오름세에 접어든 상황에서 성급한 개입이었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장기금리 상승은 미국의 금리 상승 기대로 너무 평평했던 채권 수익률 곡선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며 “아직 장단기 금리 차가 크지 않은 상황이라 한은이 벌써 주사위를 던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한은의 단순매입에 대한 기대감이 전 거래일에 이미 반영됐다”며 “금리가 추가로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다소 줄어들면서 한은의 매입에도 시장 반응이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장기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자금조달 금리가 오른다는 말인데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 소식은 아니다”라며 “지금의 현상만으로 금리를 올릴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의 시장금리가 계속 오르고 정책금리도 오르면 우리나라도 정책금리를 올려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가계부채와 경기악화로 기준금리 인상이 쉽지 않은 만큼 한은이 또다시 국고채 단순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연선·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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