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미술가 신정균(30)은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베고니아 꽃을 정물 소재로 그리게 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베고니아 개량종을 ‘김정일 꽃’이라 부르며 우상화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신 씨는 자신의 행동이 불손한 것인가, 나쁜 교육을 한 것은 아닌가 멈칫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왜곡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신작 ‘베고니아 그리기’와 ‘베고니아 부르기’는 여기서 출발했다. 다닥다닥 걸린 25점의 베고니아 꽃 그림과 북한에서 불리는 ‘김정일 꽃’ 노래의 노래방 영상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종로구 세검정로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 풀(이하 ‘풀’)에서 신정균을 비롯한 작가 4팀의 전시 ‘공감오류:기꺼운 만남’이 24일 개막해 다음 달 18일까지 열린다. 2000년대 초부터 작가 발굴의 통로로 활약했던 비영리 대안공간 ‘풀’이 한동안 중단됐던 신진작가 공모프로그램(POOLAP)을 재가동한 것으로, 지원자 200여 명 중 최종 선정된 이들 4팀은 6개월간의 워크숍을 거쳐 이번 전시를 꾸렸다. 전시 제목은 비유·풍자·변형 등을 거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태어난 작품이 종종 작가의 의도와 어긋나 잘못 읽히기도 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예술이 공감과 이해를 지향함에도 말이다.
신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진술(Statement)’은 그를 의심스러운 인물로 여긴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불려가 조사받은 일화를 다룬다. “작업에 쓰기 위해 웹서핑으로 다운받은 비행지도 이미지, 이슬람권에서 가져온 신문들을 갖고 있는 것이 수상해 보였나 봅니다. 조사과정에서 당시 합기도 관장인 아버지의 과거 직업이 항공승무원인 것을 두고 ‘그렇다면 비행지도를 읽을 수 있지 않느냐’며 억지로 끼워맞추는 걸 보면서 내가 했던 작업이나 나의 일상이 남들의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강기석 작가는 박제가 된 아기 염소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걸음마를 가르치는 장면을 영상에 담았다. 이는 착한 행동인가, 나쁜 짓인가. 봉사와 희생처럼 보이는 행위지만 죽은 동물을 재조합해 만든 ‘박제’를 대상으로 한 것은 비윤리적 시작이었다.
정무진·정효영·정영돈의 작가그룹 ‘무진형제’는 개발에 의해 파헤쳐진 땅의 이야기를 ‘구아(구렁이아이)’ 설화로 풀어내 집이 개발과 투자의 대상 이전에 삶의 터전임을 읊조린다. 박지혜 작가는 전시 후 버려지거나 해체될 작품의 존재를 고민하다 바퀴 달린 소형 이동식 극장과 잘라 재배열한 나무 부재로 선보였다.
김미정 풀 큐레이터는 “어불성설의 혼란한 시대가 정의한 언어와 판단은 ‘공감의 오류’가 시작되는 순간일지 모른다”면서 “보고도 믿지 못할 이야기, 빗겨간 판단, 배려 없는 말이 오가는 현실 안에서 작가들이 포착한 시대의 문제를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02)396-4805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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