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씨, 그간 숱하게 냈던 카드대금이지만 사실 그동안 한 번도 명세서를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없다. 재테크를 한다면서 카드 명세서 한번 안 보는 건 말이 안 되지. 서경씨, 뚫어져라 명세서를 살펴본다. 근데 웬걸. 서경씨가 쓴 게 맞네, 맞아.
그런데 카드명세서에 유독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서울 31사1234 9,800원, 31자5678 6,600원, 31아 9012 3,000원’ 이게 뭐지, 아… 택시비… 많기도 많다. 이틀 건너 한 번은 기본, 어떤 날은 하루에 2번씩 찍힌 날도 있다.
또 하나, 커피빈코리아 5,600원, 스타벅스코리아 1만400원. 이건 또 뭔가,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찍혀있다.
명세표에 가득한 친근한 이름들. 세븐일레븐 ㅇㅇ점 1만3,250원, 씨유 ㅇㅇ점 7,300원. 장 보기가 귀찮아 생필품을 사러 들락거렸던 편.의.점.
아니, 나갈 땐 푼돈이라고 생각해 아무 생각 없이 긁었던 것들이 이렇게 리스트로 쭉 나오니 장난이 아니네. -.-
세상에 ‘택시비+커피값+편의점’만 대충 더해도 족히 50만원은 넘겠군(흑흑 ㅠㅠ)
서경씨,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니, 그럼 내가 이것만 아껴도 월 50만원은 아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한 달에 50만원, 열두달에 600만원. 일년에 600만원이면 샤넬 핸드백을, 아니면 막스마라 코트를 내 옷장에 고스란히 모셔올 수 있는 것을. 아니, 서경, 정신 차려. 샤넬보다 재테크를 할 거라고 큰 소리 ‘뻥뻥’ 쳐 놓고선 무슨 소리야.
매일 습관적으로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홀짝, 10분 늦게 나와 택시 슝~, 마트 가기 귀찮아 편의점에서 대충 이것저것 주워 담으면서 지출을 키웠단 말이야.
서경씨, 내가 아무 생각 소비했던 것들을 모아보니 1년에 600만원이고, 간단한 습관만 고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약할 수 있는 것들인데 손가락 사이로 나가는 것만 잘 관리해도 1년에 몇 백만원을 모을 수 있는 거잖아. 웬일이야. 하루 커피 한 잔 값의 돈을 절약해 꾸준히 모으면 목돈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의 ‘카페라떼 효과’ 같은 용어를 들이대지 않아도 푼돈의 위력은 엄청나다.
서경씨, ‘푼돈(?) 가계부’를 쓰기로 했다. 서경씨는 손가락 사이로 나가는 ‘돈 걸어잠그기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내걸고 1년 동안 푼돈으로 모아 저축할 돈으로 500만원을 정했다. 500만원을 1년에 저축하려면 나누기 12를 하면 한달에 42만원. 계산은 정말 쉽다. 나에게 보상도 확실히 줘야지, 겨울 휴가를 앞두고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서경씨. 그래, 푼돈을 모아 200만원은 여행비용으로 그리고 300만원은… 샤넬? 아니죠! 저,,, 저축이죠.
서경씨, 일단 통장을 새로 하나 만들었다. 통장 이름은 ‘푼돈, 놓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렇게 절약한 돈을 따로 한번 모아보기로 했다. (통장 쪼개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재테크의 진리 오브 진리. 통장으로 따로 구분하지 않으면 돈이 손가락 사이로 술술 샌다. 통장 쪼개기의 마법은 나중에 다시 설명하는 것으로)
한 달에 42만원이면 한 달을 4주로 보고 한 주에 대략 평소 소비 대비 10만원을 줄이면 서경씨는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한주에 10만원? 어랏, 이거 할 수도 있겠는데. 서경씨, 일단 이번 주엔 그가 아낀 목록들을 한번 기록해보기로 했다. 큰 실천사항은 첫째, 습관적 커피숍 방문 지양하기. 둘째, 웬만하면 택시 타지 않기. 셋째, 혼자 먹을 때 귀찮다고 배달음식 시키지 않기!
월요일 서경씨는 점심을 먹고, 아~커피 한잔 할까, 이런 생각으로 털레털레 커피숍을 향하다가 문득 아!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스타벅스 카페라떼 톨 사이즈 4,600원이 굳었다. 외근 길, 쌀쌀한 날씨에 택시를 잡으려는 그 순간, 마음을 고쳐잡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이제 서경씨가 타야할 건 BMW. Bus, Metro, Walk! 택시를 탔으면 7,000원쯤 나오는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니 1,200원만 소비했다. 또 5,800원을 아꼈구나. 푼돈 1만4,000원은 통장으로~!
화요일, 오늘도 꾹 참으며 커피 세이브. 그래, 물을 마시자. 물을 많이 마시면 피,,,피부도 좋아진다는데 이 정도쯤이야 ㅋㅋ. 모처럼 일찍 퇴근 한 서경씨. 혼밥을 먹으려니 또 귀차니즘 발동. 아, 피자 한판? 고구마피자가 일품인 동네 피자집에서 피자 한판에 콜라 한 캔 추가를 하려다 그냥 집으로 향했다. 8,000원이 세이브되는 그 순간. 커피값과 피자값만 해도 1만2,600원.
수요일, 출출한 출근길.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소시지, 음료 등 주전부리를 살까 고민하던 서경씨, 가방에 집에 있는 바나나와 이것저것을 담았다. 편의점에서 통상 출근길 쓰는 5,000원 세이브. 커피, 참자 참자 참자. 휴. 커피 금단 현상, 외근길 오늘도 어김없이 10분 일찍 나와 지하철을 탔다. 이렇게 1만5,400원.
목요일, 서경씨, 평소엔 집에서 혼자 먹는 “혼밥이 싫어!”를 외치면 집 앞 순댓국집에서 순댓국 한 그릇(6,000원)에 후식으로 파리ㅇㅇㅇ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크림빵을 사던 그녀였다. 그랬던 서경씨, 집에 들어가 남은 야채와 김치를 총총 썰어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자신을 발견. 뜨아!! 대다나다(우훗~~). 이러다 우리 서경씨, 다이어트로 미모까지 되찾겠어요. (기특기특!!) 서경씨 오늘도 참을 인(忍) 자를 세기며 참은 커피까지 합치면 1만,7000원 정도 세이브.
금요일. 오늘은 불금. 단짝 친구 세명과 맥주 한잔 하기로 한 날. 며칠동안 커피도 참으며 청교도 생활을 했기에, 그래 친구들 만나서 치맥을 먹으며 폭풍 수다를 하기로 한 날. 서경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선배’로 통한다. 조금 취하면 기분이 좋아져 마구 마구 결제하는 버릇 때문이다. 치킨 두 마리에 맥주가 오가자 계산서는 5만원이 훌쩍. 평소같으면 서경씨 이쯤이야 하면서 시원하게 긁지만 오늘은 냉정하게 더치페이!!! 그래서 평상시면 카드값 5만원을 긁었을 것을 단돈 1만7,000원에 깔끔하게 해결! 3만3,000원이나 아낀 셈이다.(와우~) 점심먹고 아낀 커피값까지 생각하면. 게다가 저녁 약속 이후엔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가면 어김없이 카카오 택시를 부르던 서경씨. 오늘은 살포시 버스정류장으로 고고. 택시비 대신 대중교통으로 그래서 또 1만원 세이브. 총 4만7,600원!!
어머. 서경씨. 이렇게 워킹 데이 기준 일주일 동안 절약한 돈이 무려 10만3,000원. 이런 추세면 일주일에 1만원, 한달에 40만원도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서경씨, 커피값 아껴 얼마 되겠어라고 했던 그녀다. 그런데 무려 10만원이 넘는.
서경씨, 푼돈 재테크에 재미가 붙는다. 서경씨는 자신의 계좌에서 ‘푼돈, 놓치지 않을거야’ 통장으로 이번 주 10만3,000원을 이체했다.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면 새는 줄도 모른 채 허공으로 사라졌을 돈이다. 이 돈이 10만원이란 실체가 되니 정말 신기하다. 그래, 이렇게 올해 커피값, 택시비 등 그저 푼돈인 줄만 알았던 새는 지출을 막아 1년에 500만원을 만들어보자. 커피가 당기고 눈앞에 택시가 아른거려도 이 돈으로 동남아 해변에서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는 자신을 상상하자. 그래. 할 수 있다!!! 택시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하니 날씬해지는 것 같은 기분은 서경씨만의 느낌적인 느낌일까. 왠지 뿌듯한 밤이다. ‘푼돈, 놓치지 않을 거야’ 통장을 은행 자유입출금에 둘 지, 아님 증권사 자산관리계좌(CMA)계좌가 있다던데 그걸 이용할 지는 이 뿌듯함을 조금만 더 즐기다 고민해 보자.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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