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왔습니다.”(유일호 경제부총리) “나갈 때까지는 현직이지.”(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선배들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들었다. 30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안 미러클 4: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출판기념회 자리였다. ‘코리안 미러클’은 경제관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를 써내려간 책이다. 하지만 최근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정공백으로 20년 전 외환위기에서 가까스로 건져낸 우리나라 경제가 다시 가라앉는 현실 속에서 전직 경제수장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이날 행사에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수습의 주인공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맏형인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과 진념 당시 기획예산위원장(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전 재경부 장관),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까지 이른바 ‘4인의 드림팀’이다.
덕담이 오가던 분위기는 유 부총리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사뭇 달라졌다. ‘연민의 정’까지 운운하며 “제일 고생하시는 분 오신다”며 유 부총리를 맞았지만 정작 “빨리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왔다”는 유 부총리의 인사에 원로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포문은 진념 전 부총리가 열었다. “왜 또 나간다는 얘기를 하나. 나갈 때 나가더라도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강봉균 전 장관이 “나가려다가 못 나가서 오래 하면 그게 제일 좋다”고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선배님들은 이런 상황을 안 겪어봐서 그렇다”며 “힘들다”는 유 부총리의 말이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맏형인 이규성 전 장관이 유 부총리에게 “나갈 때까지는 현직”이라고 충고했고 이헌재 전 부총리 역시 “사표를 낸 상태가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유 부총리가 “(후임으로 내정된)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엉거주춤하고 좀 그렇다”고 하자 진념 전 부총리는 “부총리가 두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두 사람이 힘을 모으면 어려운 상황에서 더 좋은 것 아니냐”며 애써 분위기를 돌렸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먼저 해소되고 부총리 문제가 정리돼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공직에 있는 한 하루라도 책임감을 잊지 말라”는 게 원로들의 충고였다. 유 부총리는 축사에서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결과로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국내 정치상황의 영향으로 경제주체의 심리 위축도 걱정된다”며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임세원·조민규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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