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바이오헬스 강국으로 이끌겠다’는 원대한 목표 아래 충북 오송과 경북 대구에 조성된 첨단의료복합단지, 이른바 바이오 클러스터 사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바이오 클러스터는 지금까지 1조원가량을 투입했고 앞으로 7조원 이상을 더 투자하는 대형 국가 프로젝트다.
하지만 기업·대학·병원 간 활발한 교류 협력을 통해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겠다는 목표는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는 가운데 운영 수입 저조, 예산 부족, 인력 이탈에 신음하고 있다. 특히 일부 지역은 서울 홍릉 바이오클러스터 구축 계획으로 입지가 더 좁아진데다 정부 지원 예산마저 깎일 가능성이 커지자 “사업 철회도 불사하겠다”고 반발하는 등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다.
30일 바이오의약 업계와 관련 부처, 오송·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등에 따르면 2010년부터 시작된 바이오클러스터 사업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돼 매년 1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계획이었다. 구체적으로 2013년 153억원, 2014년 167억원, 2015년 187억원이다. 하지만 실제 수입은 각각 3억원, 14억원, 22억원에 불과하다.
클러스터를 운영하는 첨복단지 재단은 인력도 당초 목표의 절반도 충원하지 못했다. 원래 올해 756명을 뽑을 계획이었지만 현 인원은 383명에 그친다. 설상가상으로 힘들게 뽑아놓은 인력은 매년 10% 정도 이탈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첨복단지에 지원하는 2017년 예산 비율을 50%에서 30%로 깎겠다고 나서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재단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은 “첨복단지는 2018년에는 국가 지원 없이 자립화하도록 돼 있고 2012년부터 구체적인 자립화 방안을 첨복재단에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계획조차 만들지 않고 있다” “첨복단지 운영비는 국가와 지자체가 50%씩 분담하게 돼 있다. 그동안 정부는 50%를 꾸준히 지원했으나 지자체는 자신들 몫조차 제대로 납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첨복단지 관계자는 “클러스터는 2013년 말에야 조성이 완료됐는데 2012년에 자립화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구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어린애한테 돈 벌어오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운영비 5대5 분담 원칙은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지자체 의견이 전혀 반영이 안 됐다”며 “계속 예산 삭감을 추진할 경우 클러스터 사업 철회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설명의 진위와 상관없이 △바이오클러스터가 수조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가 사업임에도 수년 넘게 구체적인 운영 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았고 △중앙정부와 재단·지자체 간 제대로 된 협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형적인 ‘안 되는’ 사업의 모습이다.
정부는 지자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원 규모를 줄이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이를 검토하고 있다.
오송과 대구 클러스터가 처음부터 ‘지역 간 나눠 먹기’와 정치 논리로 출범한 탓에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본래 바이오클러스터의 취지는 병원·대학의 ‘기초연구’와 기업의 ‘개발 및 사업화’ 시너지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에 있다. 연구자와 기업인이 클러스터 안에 함께 상주하며 혁신 신약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시로 공유하고 사업화에 성공해 거둔 이익은 연구자와 기업이 함께 향유하는 그림이다. 이 때문에 바이오클러스터는 우수한 대학·병원 등 연구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신약 개발을 활발히 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보스턴·샌디에이고 클러스터와 싱가포르의 바이오폴리스 등 세계적인 클러스터는 대부분 ‘기초연구와 사업화의 시너지’를 구현하고 있다. 일례로 보스턴 클러스터는 메사추세츠종합병원과 하버드·MIT 등 유명 병원·대학과 170여개 바이오 기업이 긴밀한 협업 체계를 구축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곳에서 탄생한 블록버스터 신약 ‘엔브렐’은 메사추세츠종합병원과 바이오 기업 ‘암젠’ 협업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오송과 대구 클러스터는 연구 인프라 자체가 전무한 실정이다. 오송은 국내 유수의 대형 병원을 유치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대구에는 경북대병원이 있으나 그나마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차선책으로 우수 연구인력 ‘개인’을 유치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이 때문에 오송과 대구는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만들고 임상 전 동물실험 등 과정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기능 정도밖에 못하는 상황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공무원들조차 오송에 있는 걸 힘들어하는데 어떤 연구자와 병원이 내려가려고 하겠느냐”며 “특수성이 있는 보건의료산업 발전 사업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거대 담론과 무리하게 결부시키고 지역 포퓰리즘 등에 따라 결정하니 이런 사달이 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오송과 대구의 ‘계륵’ 신세가 앞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경기도 성남시는 올 9월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나섰는데 분당서울대병원은 여기에 전폭 협력하기로 했다. 임상연구센터, 헬스케어 기업 연구소 등 기반 시설을 설치해 신약 연구개발·사업화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인천 송도 바이오 단지에는 독일의 머크, 미국의 GE헬스케어 등 굴지의 글로벌 회사들이 앞다퉈 투자하고 있다. 대형 병원, 글로벌 제약사 등은 국가가 근접성, 연구개발 여건 등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만든 오송·대구 클러스터보다 자생적으로 형성된 수도권 클러스터를 선호하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지난 9월 서울 홍릉에 바이오·의료 클러스터를 추가로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경희대 등 우수 대학·병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좋은 연구인프라가 있어 바이오클러스터 본연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홍릉 사업이 본격화되면 오송과 대구는 더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는 일단 오송과 대구 클러스터가 정상화되도록 운영비를 제대로 지원하고 지자체·첨복단지와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인 클러스터 운영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수조원이 드는 초대형 사업이 왜 이렇게 꼬이게 됐는지 철저한 반성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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