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을 때 멈추지 않는다. 할 일을 마쳤을 때야 멈춘다(I don‘t stop when I’m tired. I stop when I‘m done)’
유진산 파멥신 대표의 페이스북 프로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 메릴린 먼로가 일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며 했던 말이다. 1일 만난 유 대표는 이 문구를 좌우명 삼아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마쳐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묻자 “우리가 개발한 약으로 세계 항암제 시장을 평정하는 것”이라는 야심 찬 답변이 돌아왔다.
유 대표의 자신감의 근거는 회사가 보유한 독자적인 ‘항체 기술’에 있다. 항체는 암 종양 등에 있는 단백질(항원)과 결합해 나쁜 세포를 없애는 역할을 한다. 항체를 이용한 치료제는 특정 항원에만 작용해 부작용이 적고 효능도 높아 각광 받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의약품 톱10 중 6~7개가 항체치료제일 정도다.
파멥신은 국내 제약사로는 드물게 항체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특히 독자적인 ‘항체 라이브러리(도서관)’를 통해 기존에 개발되지 않은 새로운 항체 후보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와 글로벌 바이오벤처캐피털 오비메드가 일찌감치 파멥신에 투자한 이유다. 두 회사는 아직도 파멥신의 지분 21%를 보유하고 있다.
파멥신의 항체 신약 후보 중 가장 개발 속도가 빠른 것은 악성 뇌종양 치료제로 개발되는 ‘타니비루맵’이다. 유 대표는 “블록버스터 치료제인 ‘아바스틴’과 ‘얼비툭스’와 비슷한 기전이지만 동물실험, 임상 1상에서 아바스틴보다 안전성·효능에서 모두 우위에 있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얼비툭스 개발 주역이자 전 노바티스 부사장인 젠핑 주 박사가 타니비루맵을 보고 ‘기존 항체치료제보다 우수하다’고 인정해줬을 정도”라며 “주 박사의 평가 덕에 노바티스로부터 투자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특히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의 경우 타니비루맵을 기술 이전하지 않고 독자 개발해 공략할 계획이다. 그는 “임상 초기 단계에서 기술을 이전하면 당장 개발 비용은 아낄 수 있지만 시판 허가 이후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며 “현재 아바스틴이 뇌부종으로 연간 6,000억원의 매출을 내는데 타니비루맵을 독자 개발하면 이 시장 대부분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니비루맵은 현재 호주에서 임상 2a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에 미국·유럽 등에서 2b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파멥신의 또 다른 비장의 무기는 차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와 이중항체치료제다. 유 대표는 “면역항암 신약 후보 물질만 10개 정도를 갖고 있다”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특허 출원, 전임상 절차에 들어가려 한다”고 밝혔다. 두 가지 타깃을 동시에 공격하는 이중항체치료제인 ‘DIG-KT’는 이르면 내년 미국 FDA에 임상 신청을 계획하고 있다.
유 대표는 “중동·중남미 시장의 경우 타니비루맵과 이중항체치료제 모두 기술이전 계약 논의가 활발하다”고 전했다. 이어 “세계 항암제 시장을 평정하고 암을 ‘관리 가능한 질병’으로 만드는 날까지 우직하게 정진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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