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남성 A씨는 얼마 전 화장실에서 미끄러지면서 얼굴이 벽에 부딪힌 채 쓰러졌다. 목을 다쳐 일시적으로 사지마비가 왔지만 수술 경과가 좋아 이제는 혼자서 움직일 만하다.
A씨의 진단명은 다소 생소한 ‘후종(後從)인대 골화증(骨化症)’. 척추뼈 사이의 움직임을 유지하면서 어긋나지 않도록 척추 앞 뒤에서 세로, 즉 종(縱) 방향으로 지지해주는 두 가지 인대 중 척추제 뒤, 척추관 앞쪽에 있는 인대가 석회화로 뼈처럼 단단하게 굳어지면서 튀어나와 척추관을 지나는 신경을 압박해서 생기는 질환이다. 그런 점에서 척추 추간판(디스크)이 신경을 누르는 추간판탈출증과 발생 기전과 경과가 완전히 다르다.
◇50~60대 남성 유병률 11% 수준=우리나라 인구의 4.6%인 230만명가량이 후종인대 골화증 환자로 추정된다. 연령대별 유병률은 50대가 남성 10.5%, 여성 4.8%, 60대가 남성 11.6%, 여성 7.4%, 70대 이상은 남성 16.9%, 여성 8.9% 수준이다. 제2~5 경추에 걸쳐 다발성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 질환의 원인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백인의 유병률은 0.1~0.2% 수준에 불과한데 한국·일본·중국·대만 등 동북아 국가에서 유독 유병률이 높아 유전적·인종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뇨병, 비만, 면역질환, 강직성 척추염 등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후종인대 골화증을 예방하려면 올바른 척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 목의 굴곡을 심화시키는 엎드려서 책보기, 누워서 TV 보기, 높은 베개, 팔걸이가 높은 소파에 장시간 눕기 등은 피해야 한다. 습관적인 목 돌리기·꺾기도 목뼈(경추)와 추간판에 손상을 줘 후종인대 골화 등 퇴행성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1년에 4㎜ 정도씩 커져 신경 압박=후종인대 골화증은 주로 목뼈 쪽에서 발생하며 초기에는 증상이 없거나 목 부위 통증과 압박감이 느껴지는 정도다. 척추관이 65%가량이 좁아져야 신경학적 징후 및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10~30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며 1년에 4㎜ 정도씩 인대가 커진다. 후종인대가 딱딱해지고 커질수록 신경을 압박해 팔·손 저림, 통증, 감각저하가 나타나고 심해지면 다리의 근력저하와 감각 이상, 보행장애, 배뇨·배변장애가 찾아온다. 교통사고 등 외상으로 급격히 악화돼 팔다리 마비가 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X레이나 전산화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을 보고 곧바로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느끼는 증상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X레이와 CT 영상에서는 골화된 후종인대가 하얗게 보인다. 방사선이 투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X레이는 질환이 아주 심해진 경우가 아니면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CT는 골화가 어디까지 진행됐고 크기는 어떤지 알 수 있어 진단에 유용하다. 다만 신경장애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척수신경 등의 상태를 확인하려면 MRI를 찍어야 한다. MRI도 골화 부위를 제대로 알 수 없어 증상이 심한 환자를 진단하거나 수술하려면 CT와 MRI 영상이 모두 필요하다. 척수신경 사이사이가 하얗고 밝게 보이면 척수신경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다.
◇골화 부위 제대로 제거 안하면 재발=환자의 상태에 따라 신경학적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경과를 관찰하면서 치료를 해야 한다. 신경 압박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척수신경에 되돌릴 수 없는 변성이 나타나 수술을 해도 손상된 신경 기능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척추관 침범이 심하거나 소염진통제 등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방사통이 있는 경우, 보행장애, 손의 섬세한 운동장애 등과 같은 척수병증이 보이는 환자에게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수술방법은 척수병증의 정도, 침범된 척추 분절의 범위 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경증이라도 병변이 척추관의 40% 이상을 차지하거나 MRI에서 척수신경 신호에 변화가 있는 경우, 젊은 경증·중증 척수병증 환자의 신경학적 결손 예방을 위한 수술도 이뤄진다. 골화된 부위가 완전히 제거하지 않거나 목뼈를 잘 고정한 상태에서 수술이 이뤄지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
정천기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수술 여부는 통증이 아니라 신경이 얼마나 눌렸는지, 손발이 저리거나 마비증세가 오는 등 신경학적 증상이 있는지 여부를 보고 판단한다”며 “MRI 영상에서 척수 손상이 진행된 경우 등 적절한 수술 시기를 놓치면 척수가 망가져 사지마비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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