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리면 생기는 비정상 혈관인 ‘암 혈관’을 정상으로 되돌려 암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됐다. 항암제와 함께 사용시 종양 크기가 크게 줄고 생존기간이 증가해 암 치료에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12일 혈관연구단 고규영 단장(KAIST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과 박진성 연구원(KAIST 박사과정)이 암 혈관을 일반 혈관처럼 정상화하면 암의 진행과 전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암 연구 분야 최고학술지인 ‘캔서 셀’에 게재했다고 밝혔다.
암은 성장과 전이를 위해 스스로 혈관을 만든다. 그러나 암 혈관은 정상 혈관과 달리 구조와 기능이 불안정하다.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며 종양 주위로 피가 새어 나온다. 이 같은 특징은 암세포 내 저산소증을 유발하며 항암제 전달을 어렵게 한다. 저산소증은 암의 유전적 변이와 암 혈관 신생을 촉진한다. 즉 저산소증은 암 혈관을 자라게 하고 암 혈관은 저산소증을 악화하는 악순환 구조다.
연구진은 암 혈관을 정상화시키면 암세포로 충분한 산소가 공급돼 저산소증에 의한 암 진행이 둔화되고 항암제도 더 잘 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구진은 혈관의 분화와 안정을 촉진하는 단백질 ‘TIE2’에 주목했다. 이 물질을 활성화하면 암 혈관을 안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기존에는 혈관신생 억제제로 이런 효과를 노렸지만 되레 저산소증을 일으키기만 했다.
실제 연구진이 뇌종양과 유방암·폐암 실험동물에 ‘TIE2 활성 항체’를 투여한 결과 불안정한 암 혈관이 정상 혈관으로 바뀌었다. 암세포 내부에 피가 공급돼 산소공급이 늘었고 항암제와 면역세포의 침투가 늘어났다. 혈액 누출과 부종도 감소했다. 특히 연구진은 항암제와 함께 투여시 항암제만 투여했을 때보다 종양 크기가 40% 감소하고 평균 생존기간이 42% 이상 증가함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암 혈관이 새로 생기는 것을 막아 암 치료법의 방향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특히 암뿐만 아니라 당뇨망막병증, 노인성 황반변성, 녹내장 같은 다양한 혈관 관련 질환에서도 정상 혈관과 다른 특성이 관찰돼 이번 연구 결과를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규영 IBS 혈관연구단 단장은 “이번 연구는 암 혈관을 없앤다는 기존의 접근방법을 버리고 오히려 암 혈관의 구조와 기능을 정상화하는 게 종양 조절에 유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암의 환경을 변화시켜 치료에 용이한 환경을 만든다는 개념은 향후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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