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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의 위기...월 100만원도 못쓰는 가구 13%

하위 40%가구 소득 첫 감소

청년실업도 11월까지 9.9%

2003년과 달리 경제상황 나빠

중산층으로 위기확산 우려도







우리 경제에 지난 2003년 카드대란과 같은 저소득층 중심의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시에는 40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발생하면서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으며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실업률이 급등하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는 등 각종 사회문제가 불거졌다. 지금도 소득 하위 40% 가정의 소득이 사상 처음 쪼그라들었으며 한 달에 100만원도 쓰지 않는 가정이 전체의 13%에 달하는 등 저소득층이 무너지고 있다. 카드대란 때는 세계 경제가 ‘골디락스(이상적인 상황)’ 국면에 진입해 우리도 ‘V’자로 급반등했지만 현재는 대외여건이 좋지 않아 결국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환위기와 지금이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그때보다 탄탄한 외환보유액, 경상흑자 등을 고려할 때 시스템 위기까지 번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보호무역주의 등이 심화한다면 카드사태와 같이 경제 내 취약계층 중심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1997년 환란 이후 김대중 정부는 내수로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다. 1999년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가 폐지됐고 카드 소득공제도 도입해 사용을 부추겼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소득이 없는 주부, 대학생들까지 신용카드를 즉석에서 발급받았다. 이에 1990년 1,000만장에 불과했던 신용카드는 2002년 1억장을 넘었고 사용액도 1998년 64조원에서 2002년 623조원으로 10배 가까이 폭증했다. 여러 장의 신용카드로 카드 빚을 돌려막는 현상도 나타났다.

개인의 소득을 넘어서는 소비는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소득이 높은 계층은 카드 빚을 갚을 수 있었지만 저소득층은 불가능해 2003년 신용불량자가 372만명으로 불어났다. 2002년 7%에 불과했던 청년(15~29세) 실업률은 경기가 급랭하자 2003년 8%로 뛰었다. 일용직 일자리도 2002년 243만명에서 2003년 213만명으로 1년 새 30만개(12.5%)나 증발했다.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하위 40%(소득분위 1·2분위) 가정의 소득이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질쳤다. 올 들어 3·4분기까지 하위 40%의 명목소득은 지난해보다 2.3% 줄어 2015년의 3.8% 증가에서 하락 반전했다. 비교 가능한 2003년 이후 하위 40%의 소득 감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가정의 소득이 0.8%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경제는 약 4%씩 팽창(올해 명목 경제성장률 전망치)하는데 저소득층의 벌이는 오히려 쪼그라들고 있다.

벌이가 줄어드니 씀씀이도 감소했다. 3·4분기 한 달에 100만원도 쓰지 않는 가정의 비율이 13.01%로 금융위기 이후(2009년 3·4분기 14.04%) 이후 가장 높았다. 전체 가정 열 곳 중 한 곳 이상은 온 가족이 한 달에 100만원도 안 쓰고 있다는 의미다. 청년 실업률도 11월까지 평균 9.9%로 통계가 있는 2000년 이후 가장 높았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저소득층의 소득은 줄어드는데 라면·콜라·담배 등 서민물가는 오르고 있고 공공요금 등 준조세도 상승하고 있어 고통이 심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2003년에는 세계 경제 호황이라는 구원투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해외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이다. 김 원장은 “대외여건이 상당히 좋지 않아 경기부진이 장기화하며 경제가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안한 경제 상황이 계속되면 위기감이 저소득층에서 중산층 이상으로 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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