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정체에 양극화 심화로 가라앉고 있는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스위스 모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스위스는 국민의 조세부담률이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그에 비해 복지 규모는 상대적으로 큰 ‘저부담·중복지’ 모델이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다투는 양비론적 논의에서 벗어나 기업의 혁신을 통해 1차 분배가 이뤄지고 여기서도 성장의 열매를 받지 못하는 계층을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서울 세종로 KT광화문빌딩에서 열린 국가구조개혁포럼에서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국민 조세부담률을 1%만 높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저부담·저복지 모델인 우리나라가 고부담·고복지인 스웨덴이나 중부담·중복지 독일처럼 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 국가 모델로서 스위스형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가 당면한 위기의 원인을 네 가지로 꼽았다. 우선 혁신 역량 하락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제조업이 성장동력을 상실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저성장에도 양극화로 인한 부의 집중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기업소득이 6.9% 증가할 때 가계소득은 8.6% 되레 감소했다. 또 지난 1995년 가계 전체의 29%였던 소득 상위 10% 가계의 소득 비중은 2010년 기준 48%까지 늘었다. 쉽게 말해 1995년 상위 10% 가계에 돌아간 소득이 전체 100만원 중 29만원이었다면 2010년에는 48만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사회 활력도 저하됐다. 이 이사장은 “한국 경제는 세습경제다. 1조원 이상의 부자 84%가 상속형인데 미국은 33%, 일본은 12%에 불과하다”며 “기업의 혁신이 사라지면서 최근 ‘금수저 흙수저’ 논란도 시작됐다”고 말했다.
양극화로 불거진 불신으로 정치가 표류하고 있지만 과거 개혁에 관한 논의는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를 놓고 다투면서 해법 도출에 실패했다는 게 이 이사장의 분석이다. 그는 무엇보다 과거의 ‘추격형’ 전략을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노동시장 유연화와 더불어 생산성 비례임금 원칙을 세워야 청년실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이 취직하는 것보다 창업하는 게 유리하도록 유인 동기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과거 제조업에서 있었던 ‘낙수효과(trickle down)’가 신산업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여기에 사회안전망까지 구축하게 되면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되는 경제구조를 짤 수 있다는 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두 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김병섭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장은 “조류인플루엔자(AI) 살처분 가축 수가 일본은 78만마리에 불과한데 우리나라는 1,900만마리를 넘었다. 뭔가 국가가 잘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새로운 국가구조에 맞게 헌법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주제 발표 이후 벌어진 토론에서는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정부 개편은 맛없는 피자는 그대로 놔두고 피자 조각 수만 늘리거나 줄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경제발전 과정에서 커진 생산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다른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 역할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직접 지원 및 과도한 규제를 폐지하고 혁신생태계 조성에 집중해야 4차 산업혁명에 낙오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가 사회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이각범 한국미래연구원장은 “분권과 협치를 원칙으로 하는 국가권력구조로 바꾸고 네트워크 기반의 수평적 분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혁신과 교육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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