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처음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던 지난 1996년과 비교할 때 올해 살처분된 닭·오리 등의 개체 수가 200배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1996년 이후 AI 발생빈도가 잦아지고 피해도 늘어나자 정부는 반복적으로 방역 강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21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우리나라 전체 닭 가운데 10.6%인 1,637만5,000마리와 오리 193만8,000마리, 메추리 등 89만7,000마리 등이 살처분됐다고 밝혔다. 살처분 예정인 163만9,000마리를 더하면 총 2,084만9,000마리로 사상 최단 기간 최대 피해를 입었다.
국내에서 AI가 처음 발생했던 1996년 살처분 수는 9만7,000여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20년 동안 거의 매년 반복하다시피 AI가 발생했지만 피해 규모가 줄기는커녕 200배 넘게 늘어났다. 물론 정부도 반복되는 AI 재난에 맞서 대책을 마련해왔다. 2008년과 2010년에 연이어 홍역을 겪으며 약 1,600만마리 이상이 살처분되자 정부는 2011년 △전 농가 대상 축산업 등록제 시행 △방역관리과 신설 등을 담은 ‘가축질병방역체계 선진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잠잠하던 AI는 2014년 다시 터졌고 방역에 실패하며 살처분 규모가 1,937만마리로 늘어났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2014년 농가의 보상금을 올려 지역 단위의 방역 역량을 강화하는 ‘AI 방역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올 8월에는 3단계 방역관리를 담은 대책을 내놓으며 ‘AI 청정국 지위 회복’을 선언했다. 최종 살처분 이후 3개월간 AI 발생이 없었다는 이유였다. 이후 11월7일 “올해 고병원성 AI 재발생 위험은 낮다”고 발표했지만 나흘 만인 11일 사상 최악의 AI가 발생했다.
농가들은 AI 방역대책에 ‘현장감’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매년 오는 철새들 때문에 AI 유행을 막을 수 없다면 개별 농가들의 방역 역량을 높여야 하는데 그럴 유인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AI 감염 때 살처분된 가금류에 대해서만 보상해준다. 하지만 살처분 비용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다’고만 규정돼 있고 일부 지자체는 관련 비용을 농가에 부담하게 하는 실정이다.
또 일부 지자체와 농가는 죽은 가금류의 살처분 비용을 두고 옥신각신하며 살처분이 늦어져 방역에 실패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달 12일 정부는 역학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며 이번 AI의 경우 축사를 오가는 차량과 사람에 의해 퍼지는 ‘수평감염’보다 철새의 이동·접촉에 따른 ‘수직감염’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양계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앙정부는 AI 대유행 사태에서 농가의 방역 실패 책임이 적다고 발표했는데 지자체는 농가 책임으로 몰고 있다”며 “애써 키운 닭과 오리를 살처분하는 것도 서러운데 (살처분) 비용까지 물어야 할 지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복 발생지역에 대한 관리도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충남 천안시 풍세면은 구멍 뚫린 방역체계의 민낯을 드러내는 사례다. 11일 AI가 처음 발생한 이 지역은 국내 주요 철새도래지인 풍세천이 있는 곳으로 2003년 국내 최초로 고병원성 AI가 창궐한 곳이다. 하지만 재발 방지는 고사하고 2006년과 2010년에 이어 올해도 AI가 발생했다. AI 중복 발생지역 관리에 대한 허점이 메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종=박홍용기자, 구경우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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