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9개월여 만에 1,200원대를 뚫고 올라섰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위기가 불거지면서 환율이 급등했던 지난 3월10일(1,203원50전) 이후 처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현실화 등으로 새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칠 경우 가뜩이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환(換)리스크마저 겹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원90전 오른 1,203원에 마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0~0.75%로 0.25%포인트 인상한 14일 이후 8거래일 연속 오름세다. 이 기간 종가 기준 상승폭은 33원30전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일 종가 대비 5원90전 오른 1,205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밤사이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년 만에 최고치인 3.7%를 기록했다는 소식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데다 유럽 은행 부실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원화 약세 요인이 겹쳐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렸다. 이후 1,201원까지 물러서기도 했지만 장 마감을 앞두고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 1,203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일단 당국은 진정되는가 싶던 원·달러 환율이 다시 오름폭을 키우는 것이 강달러로 인한 기조적 흐름 탓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연말 외환시장의 거래량 급감으로 달러 공급이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투자자의 해외투자 등으로 달러화를 사들이는 수급 요인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기조적인 강달러 흐름인 것은 맞지만 평소 80억~100억달러에 달하던 거래량이 50억달러가량으로 줄어든데다 해외투자에 나서는 국내투자자들의 달러화 매수 수요가 많아지면서 쏠림 현상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도 투기성 거래 등에 따른 급격한 쏠림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시장에 적극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시적 수급 요인일 수 있지만 앞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세 더 가팔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내외 금리 차로 자본유출 문제까지 불거지면 환율이 더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금리 인상이 선반영됐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내년 금리 인상만 적어도 두 번인데 이것으로만도 환율이 오르는 속도는 연초 차이나 리스크 때보다 더 빨라질 수 있다”면서 “이미 많이 올라 있는 상황이지만 언제, 어디까지 오를지가 문제다. 자본유출이 급격해지면 환율 오름세는 더 가팔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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