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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 사라진 여성들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6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개선이 되고 있다지만, 포춘 500대 기업의 여성 CEO 수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많은 여성 CEO들이 연임 기회를 얻지 못하고 기업의 ‘연옥(Purgatory)’에 갇히고 있다. 왜 기업들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인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르네 제임스 Renee James는 최고경영자에 부합하는 이력서를 갖고 있다. 그녀는 제품 관리자에서 인텔 사장으로 승진한 인물이다. 다양한 부서에서 경영과 지원 역할을 수행하는 등 무수히 많은 경력을 쌓아왔다. 그녀는 반도체 업계의 독보적인 여성 기업가로, 2014년 포춘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Most Powerful Women · 이하 MPW)’ 리스트에서 2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제임스는 인텔 CEO 폴 오텔리니 Paul Otellini를 대체할 내부 후보자 2명 중 1 명이었다. 그녀와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Brian Krzanich가 함께 회사를 이끌겠다는 매운 드문 제안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크르자니크가 CEO에 선임되었다. 2년이 지난 2015년 7월 제임스는 “외부 기업 CEO 자리를 맡기 위해 내년 1월 회사를 떠난다”고 발표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람들은 제임스(52)가 금방이라도 다른 대기업 CEO에 스카우트 됐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진퇴양난(Catch-22)’에 빠졌음을 알게 되었다: 기업 이사회들은 그녀에게 CEO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채용을 주저했다. 제임스는 “나는 매우 큰 기업의 사장이었다. 그 어느 기업보다도 큰 기업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CEO 경험이 없는 신출내기’라고 말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지 아는가? 해도 해도 너무 심하다”고 토로했다.

올해 초 제임스는 칼라일 그룹 Carlyle Group의 글로벌 텔레콤·미디어·기술 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올랐다. 실세 자리에다 급여도 매우 높다. 그녀도 맘에 들어 했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대개 경력의 내리막에 들어선, 더 이상 야심 찬 목표를 원하지 않는 은퇴한 CEO들이 가는 곳이다. 제임스와는 거리가 먼 자리다. 그녀는 활발하고 매우 적극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시티와 오라클 등 주요 기업들의 이사회 멤버도 겸하고 있다.

126명의 여성들이 2000~2015년 포춘의 MPW 리스트에서 탈락했다. 물론 이들 가운데 대략 30명은 본인 의지로 은퇴했거나, 65세가 넘어 대기업 CEO가 되기에 나이가 많았을 수도 있다. 4명은 아프거나 세상을 떠났다. 16명은 직급이 더 높은 다른 여성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리스트에서 빠졌고, 현재도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작은 스타트업, 사모펀드, 그리고 비영리단체로 옮기거나 이사회 이사로서 파트타임 근무를 하고 있다. 12명만이 대기업 주요 경영진으로 이직을 했다. 현재 비상장 혹은 상장 기업의 CEO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8명뿐이다. 대기업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았고 지금도 왕성하게 일할 연령대에 있음에도, 포춘 리스트에 올랐던 모든 여성들 가운데 13%만이 상장 대기업의 또 다른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 생활의 궁극적 목표인 ‘CEO 되기’에 성공한 사람들 조차도 CEO를 한번 더 하기는 어렵다고 얘기한다. 지난 2004년 이후, 포춘 500대 기업 여성 CEO 50 여명 가운데 2 명-멕 휘트먼 Meg Whitman과 수전 캐머런 Susan Cameron-만이 다른 포춘 500대 기업의 CEO로 자리를 옮겼다. 휘트먼은 이베이에서 휼렛 패커드로 이직을 했다. 캐머런은 그녀가 과거에 일했던 레이널즈 아메리칸 Reynolds American CEO에 선임돼 돌아갔다(세 번째는 캐럴 바츠 Carol Bartz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포춘 1000대 기업에 속한 오토데스크 Autodesk의 CEO를 역임한 후 야후 CEO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다면 포춘 500대 기업들에서 여러 차례 CEO를 역임한 많은 남자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헤드헌팅업체 스펜서 스튜어트 Spencer Stuart의 통계를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같은 시기에 압박을 받고 회사를 떠난 93명의 남성 CEO 중 5명은 다른 상장사 CEO로 복귀했다. 반면 밀려난 5명의 여성 CEO 중 복귀한 사람은 전무하다.

CEO 자리가 매우 국한돼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남녀를 불문하고 CEO 자리를 얻는 게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내부 승계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외부인이 CEO로 영입되는 건 로또 당첨과 비슷한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펜서 스튜어트에 따르면, 지난해 신임 CEO의 10%만이 외부 인사였다. 남녀 모두 원래 속했던 회사에서 CEO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다른 곳의 CEO 자리에 오른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리가 부족하다는 ‘희소성’ 만으론 포춘 500대 기업의 CEO 중 24명, 다시 말해 4.8%만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이 수치는 2년간 큰 변함이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주 조금 상승했다).

이런 기사를 쓴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포춘은 오랫동안 기업 내 여성의 성장을 지지해왔고, 실제로 발전도 있었다. MPW 리스트에 오른 여성들은 모든 측면에서 대단하다. 여성 CEO들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1조 1,000억 달러를 관리한다. 이들은 방위산업에서 IT, 그리고 소비재까지 다양한 방면의 산업을 경영하며, 수 백만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한다. 기업 이사회와 최고 경영진, 공공부문은 물론, 심지어 백악관(자유세계의 최고 책임자인 미국 대통령도 여성이 될 듯하다 (*역주: 이 기사는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에 쓰여졌다))까지 영역을 계속 넓히고 있다.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고위 경영진으로 경험을 쌓고 커리어 정점에 있었던 그렇게 많은 여성 스타 경영인들이 CEO에 오르지 못한 건 뭔가 잘못된 일이다. 한창 최고의 업무 능력을 보이는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이다. 적어도 대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변동성과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는 이 시기에 엄청나게 많은 최고 인재들을 잃고 있는 셈이다. 스펜서 스튜어트에서 북미 지역 CEO의 관행과 이사회 관행 연구를 총괄하는 짐 시트린 Jim Citrin도 “커다란 인력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여성 CEO 수가 너무 적어 한 명의 신임 여성 CEO가 추가되면, 전체 통계자료가 크게 바뀌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잘못된 점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왜 그렇게 많은 여성 CEO들-끊임없이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해 온 여성들-이 미국 재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답은 ‘유리 절벽(Glass Cliff)’에 있다. 미끄럽고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정상에 오르기까진 수십 년이 걸리지만, 추락하는 데는 불과 몇 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2004년 영국 엑세터 대학의 미셸 라이언 Michelle Ryan과 알렉스 하슬람 Alex Haslam 교수가 만든 신조어로, 여성들이 상황이 좋지 않거나 위기에 처한 기업의 CEO 자리 제안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남성들은 이런 자리를 매우 위험하다고 보는 반면, 여성들은 자신의 패기를 입증할 최선의 방법이 가장 힘든 ‘임무’를 맡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엑세터 대학 사회조직심리학 교수인 라이언은 “여성 CEO들의 임기는 한 마디로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전형적인 최근 사례는 머리사 메이어 Marissa Mayer 야후 CEO의 험난했던 임기다 (앞으로 그녀에 관해 더 많은 내용을 언급할 것이다). ‘유리 절벽’이 기업에만 국한된 건 아닌 것 같다.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브렉시트 국민 투표 이후 테레사 메이 Theresa May가 영국 총리로 갑작스레 부상한 사실을 주목해보자. 국민 투표 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했던 남성 정치인들은 그 혼란스러운 후폭풍을 해결할 기회를 거부했다.

새로운 연구는 이런 이론을 뒷받침한다. 유타 주립대 교수 앨리슨 쿡 Alison Cook과 크리스티 글래스 Christy Glass는 2014년 포춘 500대 기업의 모든 여성 CEO 50명을 조사했다. 그들은 여성 CEO 42%가 위기의 순간 임명 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비해 같은 시기 비슷한 환경에서 선임된 남성 CEO는 22%에 머물렀다. 또한 이들 여성은 적은 권한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CEO에 오른 여성들 가운데 13%만이 이사회 의장으로 지명된 반면, 남성들은 이 비율이 50%나 됐다.

여성 CEO들이 남성들보다 압박을 더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사실이다. 프라이스워터스하우스쿠퍼스(PwC)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2003~2013년 여성 CEO의 38%가 자리에서 쫓겨난 반면, 남성들은 그 비율이 27%에 불과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사임한 모든 CEO의 임기를 분석한 스펜서 스튜어트는 취임 당시 그들의 평균 나이는 매우 비슷했지만-여성은 50세, 남성은 52세-평균 재임기간은 남성 9년, 여성 7년으로 여성이 훨씬 더 짧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쿡은 “여성들은 위기 때 승진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그들은 더 많은 압박을 경험하게 된다. 기업 회생이 안되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역주: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따라온다”: 여성들은 능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해낼 수 없다 같은 식이다. 전 인텔 사장 제임스가 말했듯이, “여성인 당신은 선구자다. 약속의 땅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죽게 된다.”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가장 힘든 일에 종종 자원하게 되는 여성의 상황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성공하기 더 쉬운 ‘전권을 가진 CEO’ 자리를 얻게 될 가능성이 줄어드는 건 아닐까? 필자가 지난 25년간 프록터 앤드 갬블 Proctor & Gamble에서 승승장구한 멜 힐리 Mel Healey에게 ‘유리 절벽’을 언급하자, 그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CEO 자리를 데이비드 테일러 David Taylor에게 빼앗기기 전까지 320억 달러 규모의 북미사업부를 맡았던 그녀는 “내 경력에서 기업 회생이 필요하지 않았던 곳은 없었던 것 같다. 첫 날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여성 임원들이 이런 도전을 받아들여 성공을 하면, ‘위기 전문가’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이 여성들의 경영 능력이 정상적인 기업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샐리 크로첵 Sallie Krawcheck은 대기업 외에도 다른 곳에서 몇 차례 더 위기 전문가로 활약한 몇 안 되는 여성 가운데 한 명이다. 샌퍼드 번스타인 Sanford Bernstein의 CEO에 오른 후, 그녀는 시티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곳에서 처음에는 스미스 바니 Smith Barney를 이끌다가 나중에 모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선임됐다. 해고된 다음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Bank of America에서 메릴 린치 Merrill Lynch 자산관리 사업부를 책임졌다. 크로첵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유리 절벽에 3번 정도 서 있었다. 부실 기업을 회생시키는 전문가로서의 명성 때문에 그런 일만 제안 받았다. 인사담당자에게 물은 적도 있었다. ‘당신들도 같은 제안을 할 거죠?’“

이런 압박과 더불어 모든 CEO를 더욱 힘들게 하는 ‘주주 행동주의’도 증가하고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 캐리 경영대학원(Carey School of Business)의 새로운 연구가 보여주듯, 여성 경영자들에겐 더욱 그렇다. 출간을 위해 심층 검토 중인 이 연구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여성 CEO들은 특정 시점에 주주 행동주의자들과 부딪힐 가능성이 27%다. 반면 남성 CEO들은 그 가능성이 1% 미만이다.

(거의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행동주의자들은 여성 CEO가 압력에 굴복하기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쇠락하고 있어 여성이 CEO가 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을 정조준 하는 것일까? 지난 2년간 행동주의자들이 확실하게 타깃으로 삼았던 기업들은 듀폰(엘런 쿨먼 Ellen Kullman이 2015년 갑작스럽게 사직하기 전까지 경영을 책임졌다)과 몬델리즈(아이린 로즌펠드 Irene Rosenfeld가 이끌었다), 그리고 펩시코(인드라 누이 Indra Nooyi가 CEO다) 등이었다.

여성 CEO가 남성들과 같은 이유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리 절벽’에 직면한 모든 여성 경영자들이 추락한다는 뜻도 아니다. 올해 MPW 1위에 오른 메리 바라 Mary Barra가 매우 희박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성공신화를 써가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그녀가 2014년 1월 CEO에 등극한 며칠 후, 제너럴 모터스는 치명적인 260만 대의 대규모 리콜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바라의 냉철한 리더십과 실수를 인정하려는 태도 덕분에, GM은 안정을 찾으며 기록적인 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외부 CEO의 성공 스토리도 있다. 하스브로 Hasbro와 휼렛 패커드를 거쳐 이베이로 옮긴 멕 휘트먼, 여러 업계에서 능력을 두루 인정 받은 얼타 뷰티 Ulta Beauty의 CEO 메리 딜런 Mary Dillon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맥도널드의 글로벌 최고마케팅책임자와 유에스 셀룰러 U.S. Cellular의 CEO를 거친 딜런은 얼타에서 거의 모든 경쟁 소매업체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일궈냈다. 분명 일부 여성 CEO들은 유리 절벽에서 살아남고 있다. 하지만 유리 절벽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때때로 여성 CEO에겐 이중 잣대가 적용되기도 한다. 물론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언론(포춘도 자유로울 순 없다)은 새로운 인물과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여성 경영인이 특히 젊고 매력적이라면, 은퇴자협회(AARP)의 백인 대머리 회원보다 언론의 주목을 훨씬 더 많이 받을 것이다. 포춘이 지난 2002년 ‘최후의 양심 애널리스트’라는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크로첵은 “우리가 월가와 다른 전략을 구사하지 않았다면 포춘 1면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귀에서 털이 자라는 중년 남성이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긍정적인 관심은 더 용이하게 에너지를 결집하고,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여성들이 과도한 조명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머리사 메이어가 그런 경우다. 그녀는 포춘이 3년 동안 2차례나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마르지 않는’ 매력의 소지자였다(메이어는 젊고, 최고경영자 시절 출산을 했고, 유명인사처럼 디자이너 옷을 입는다). 하지만 그녀는 야후-오래 전에 존재이유를 상실했다-의 회생이 시도됐던 지난 5년간 경영을 맡았던 5명의 CEO 중 5번째 인물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는 약자의 도전 이야기였고, 모든 사람들은 약자를 지지했다. 최소한 그녀가 망칠 때까진 그랬다.



야후가 ‘단돈’ 48억 달러에 팔릴 예정이기 때문에, 메이어는 실패한 경영자라고 주장할 만하다. 그녀의 실패가 전임자들보다 더 낫거나 나쁘지는 않다; 그녀는 전략을 세웠지만 회사나 고객을 하나로 규합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승기와 하락기 모두에서 그녀가 받은 관심은 야후의 규모와 중요성에 비해 너무 과도했다.

메이어가 다른 대기업 CEO로 옮길지 혹은 옮겨야 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녀는 그렇게 되지 않을 듯하다. 2014년 리스트에서 빠진 13명의 여성들을 살펴보자. 그 중 한 명인 아처 대니얼스 미드랜드 Archer Daniels Midland의 팻 워츠 Pat Woertz는 은퇴를 했다. 다른 네 명은 기존 회사에 남아있지만, 다른 여성들이 리스트에 오르면서 순위에서 밀려났다. 40대 혹은 50대인 나머지 여성들 가운데, 모린 시케 Maureen Chiquet 샤넬 전 CEO도 올 1월 회사를 떠났지만 아직까지 별 움직임이 없다. 인텔의 제임스, P&G 아시아 사업부의 전 수장 뎁 헨레타 Deb Henretta, 그리고 전 P&G 최고경영자 멜 힐리 Mel Healey는 사모펀드나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유나이티드헬스 그룹 UnitedHealth Group의 전 부사장 게일 부드로우 Gail Boudreaux는 일선에서 물러나 ‘경쟁사 이직 금지(Noncompete)’ 조항의 기한이 만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젤 루이스 Gisel Ruiz는 월마트 경영진에서 밀려나 현재는 글로벌 사업부 인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GlaxoSmithKline 북미사업부 수장이었던 데이드러 코넬리 Deirdre Connelly는 2015년 회사를 떠나, 지금은 메이시 백화점 이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찰스 슈왑 Charles Schwab 전 부회장이자 드러그스토어닷컴 Drugstore.com CEO인 돈 레포어 Dawn Lepore는 “많은 경우 여성들은 ‘잘 나가는’ CEO 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 같다. 비록 성공적인 결과물을 도출하더라도,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 같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고위직에 오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당신이 현재 속한 기업의 CEO가 되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가? 르네 제임스의 경험이 말해주듯, 인텔 같은 유명 기업의 CEO조차 다른 기업의 CEO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스펜서 스튜어트의 시트린은 CEO 선발 과정을 일종의 벤 다이어그램 Venn Diagram (*역주: 논리 관계나 조건식 등을 도식으로 나타내는 방법)으로 설명한다. 성공적인 후보자는 ‘능력, 신뢰도, 그리고 사람을 이끄는 능력(attractability)’이라는 세 개의 원형에 모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CEO 등 임원 자리에 오른 여성들에게 능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이력서가 충분히 능력을 입증해준다. 사람을 이끄는 능력-한 임원이 그 자리를 맡도록 설득하는 능력-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뢰도에서 여성들은 불이익을 받는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예전에 CEO를 맡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현재 여성 CEO의 80% 정도가 내부에서 발탁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P&G의 가장 복잡한 일부 사업부를 수십 년간 이끌어왔던 힐리는 회사를 떠난 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CEO 제안 전화는 아니었다. 그녀는 “임원급 자리였다. 대기업 CEO 자리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힐리는 현재 리더십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다. 바츠 역시 제안을 받았지만, 자신이 CEO 자리에 있었을 때만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녀는 “CEO였을 땐 매주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전화를 받는 여성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것이 이사회가 책임을 피하는 방식 (*역주: 여성 CEO 영입 노력을 했지만 상대가 거절했다는 식의 변명을 할 수 있다) ”이라고 지적했다. 바츠는 ”서로 다른 대기업에서 CEO를 반복해서 역임한 여성은 나와 휘트먼 2명뿐이다. 그것도 실패와 위험감수를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IT기업들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여성들의 경험을 2000년 당시 GE의 잭 웰치 후임자 후보로 나섰던 3명의 남성들과 대조해보자. 제프 이멀트 Jeff Immelt가 CEO로 선임된 후, 나먼지 로버트 나델리 Robert Nardelli와 제임스 맥너니 James McNerney 2명의 임원은 미국에서 가장 뽑고 싶은 CEO 후보가 됐다. 나델리는 홈디포 Home Depot의 CEO로 빠르게 안착했다(그는 7년 후 쫓겨나자 크라이슬러로 옮겨 회사가 파산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맥너니는 3M의 CEO에 올랐고, 나중에 보잉으로 이직한 후 뛰어난 성과를 냈다.

압박 때문에 회사를 떠나는 남성 CEO들도 물론 상황은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성희롱 스캔들(허드는 잘못을 부인했다)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HP CEO 마크 허드 Mark Hurd는 여성이었던 사프라 카츠 Safra Catz와 함께 오라클의 공동 CEO에 올랐다. 압박 하에서 회사를 떠난 여성들 가운데 대기업 CEO에 오른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여성들이 CEO가 되지 못하는 또 다른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많은 여성들이 경쟁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이다. 일부 여성들은 압박에 지쳐 결코 실현되지 못할 큰 돈벌이 기회(Brass Ring)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병이나 가족과 관련된 일 등 이해할 만한 상황 때문에 포기를 한다. 지난 2011년 드러그스토어닷컴을 월그린 Walgreens에 매각한 레포어는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 판단해 시애틀에 머물기로 했다. 그녀는 “훌륭한 CEO가 되기 위해선 모든 면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남성들은 업무에 미친 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과 능력을 갖추는 방식으로 개인 삶을 설계하는 것 같다. 누구도 그들에게 늙은 부모를 돌보거나, 학습 능력이 뒤처진 자식에 신경을 쓰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레포어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크리스티 쇼 Christi Shaw 노바티스 미국법인 대표가 지난 5월 자매의 암 투병을 돕기 위해 사임했던 것처럼. 당신은 남성 CEO가 아픈 친척을 돕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이야기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보았는가? P&G 아시아를 맡았던 헨레타는 어머니가 암 4기로 고통 받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전직을 요청했다. 그녀는 2014년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회사를 떠났다. CEO가 될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게 명확해졌고, 어머니 상태가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CEO 자리를 좇는 대신, 헨레타는 어머니와 마지막 몇 개월을 함께 보냈다. 그녀는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현재 그녀는 SSA & CO라는 컨설팅 회사의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금의 일을 즐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괜찮은 CEO 제안이 들어온다면 그녀는 어떻게 할까? 그녀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업계에서 완벽한 채용 제안이 온다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손익(P&L)을 완전히 책임지며 200억 달러 규모의 회사도 맡아 봤다. 좋아했던 일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분명 고려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여성들은 끊임없는 압박을 견디며 CEO직을 맡고 있다. 가능성 있는 제안이라면 고려하겠다는 힐리는 ”우리 여성들은 CEO가 될 정도로 강인한가?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계속 CEO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가’이다. 남성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검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맥도널드 미국 본사 CEO를 역임한 잰 필드 Jan Fields는 더욱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때때로 여성들은 ‘이런 일은 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곤 한다.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의 길을 간다. 크로첵은 최근 여성을 위한 투자 플랫폼 회사 엘레베스트 Ellevest를 창업했다. 그녀는 “같은 영화를 2번 보고 나면 또 다시 보고 싶지 않게 되는 식의 생각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포기한 건 CEO가 되기 위해 일하고, 큰 사무실에서 돈을 버는 것이었다” 고 털어놓았다.

사실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면,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팩 커랜 Pat Curran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1983년 월마트에서 애완동물을 판매하는 시간제 근로자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간호학교에 입학할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 후 25년 동안 열심히 일한 덕분에 그녀는 매장 운영을 총괄하는 부사장까지 오르게 됐다. 그녀의 커리어는 줄곧 상승세였고, 2005년 포춘의 MPW 리스트에도 오를 수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2009년 45세의 나이에 모든 것을 포기하자 동료 임원들은 깜짝 놀랐다. 커랜은 “내 인생의 2막은 봉사와 나눔으로 채우고 싶었다. 의료 분야에 대한 내 열정을 추구하며 사회 환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했다”고 말한다. 간호 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지금은 아칸소 주 로저스 Rogers에 위치한 머시 병원에서 신생아실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커랜은 급여 없이 근무를 한다. 그녀는 “커리어를 쌓으면서 매우 행복했다. 한 순간도 여성이 일하기에 어울리는 곳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지금의 일이 내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알았다면 더 일찍 시작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커랜은 비주류이자 괴짜다. 대부분 여성 임원들은 자신이 선택한 분야를 사랑하고, 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한다. 여성 CEO에 대한 통계자료가 참담하긴 하지만, 희망을 가질 이유도 있다. 지난 호에서 다룬 (MPW 리스트) 프로필을 읽어보기 바란다.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 중 일부는 모든 CEO의 선임이 이뤄지는 이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포춘 500대 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21%는 여성이다. 스펜서 스튜어트에 따르면, 98%의 기업들이 최소한 한 명의 여성 이사를 두고 있다. 이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여성 이사들이 여성을 선택하는 경향이 더 높기 때문에 꼭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엑세터 대학의 라이언 교수는 “여성 이사들이 여성을 더 뽑는 건 아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리더십에 대한 똑 같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보다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독특한 사람을 채용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는 CEO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때 코카콜라의 CEO 후보로 거론됐고, 현재 런던 소재 라이언 캐피털 Lion Capital에서 파트너로 근무하고 있는 메리 미닉 Mary Minnick은 타깃 Target과 하이네켄 Heineken, 화이트웨이브 WhiteWave 같은 유수 기업의 이사로 활동했다. 그녀는 “어떤 이사회도 논란이 되는 선택을 해서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합의를 통해 전반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내부 인사가 아니라면 보통 여성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많은 이사들은 이사회에 여성 한 명을 앉혔다고 해서 변화가 일어나기에 충분한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시트린은 가장 이상적인 숫자가 3명이라고 말한다. 스테이플즈 Staples를 포함해 3곳의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헨레타는 이사회 자체의 상대적 권한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여성들이 위원회를 이끌지 않거나 이사회 의장 역할을 하지 않으면,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그런 점에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포춘 500대 기업의 주요 임원 선임 및 지배구조 위원회 수장들 가운데 거의 28%는 여성이다. 2005년 14%에서 상승한 수치다. 감사(監査)와 보상위원회 의장의 여성 비율은 각각 18.2%와 12.6%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지위인 ‘의장직’ 숫자는 여전히 우울하다: 포춘 500대 기업의 여성 의장은 현재 3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더 많은 여성들을 찾기 위한 모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전 구글 임원 수킨더 싱 캐시디 Sukhinder Singh Cassidy가 운영하는 ‘이사회리스트(Boardlist)’와 ‘이사회 여성들(Women in the Boardroom)’ 같은 모임들을 꼽을 수 있다. 이 모임들의 목표는 ‘고려할 만한 여성 임원들이 충분치 않다’는 일반적인 불만에 대처하는 것이다. 한때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여성 프로필로 가득 찬 서류철”을 모으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그들이 이 서류철을 많은 여성 구성원들이 있는 이사회와 공유한다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 임계점이 지금은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약간은 멀어 보인다.


■ MPW 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는 방법
뛰어난 업무능력은 CEO 승진의 충분조건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야심 찬 여성은 어떻게 CEO감으로 인정 받는 걸까? 몇 가지 실질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 필요 이상으로 인맥을 넓혀라
여성들은 종종 일에 100%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결정에 다른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고, 자수성가한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함정에 빠지지 말라. 르네 제임스 전 인텔 CEO는 ”당신은 실제로 인맥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친 인맥이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조언은 회사 내에서도 적용된다. 이사회, 동료들과도 관계 형성을 해야 한다. 멜 힐리 전 P&G 북미 사업부 사장은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회사 내부에 더 많은 아군을 만드는 것이다. 회의실로 걸어 들어가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대신, 먼저 모든 잠재 반대세력을 파악하라. 여성들은 아이디어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도 사내 이사회에서 후원자를 찾는 것만큼이나 외부 인사회의 가치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시간도 함께 보내야 한다.“


■ 수평 이동을 두려워하지 말라
커리어가 항상 직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캐럴 바츠 전 야후 CEO는 ”특히 여성들은 폭넓은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마케팅 분야에 계속 머물기보단 가능한 많은 다른 역할을 수행해봐야 한다. 직위 강등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아무 기회나 올라타지 말라. 만약 그렇게 해야 한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라. 유리 절벽은 항상 존재하며 위험할 수 있다. 힐리는 ”역할이 대단하고 멋져 보여도 왜 다른 사람들이 기피하는지 이유를 직접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 상대가 저급해도 품위를 지켜라
때때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실수를 딛고 재기하기가 더 힘들다. 바츠는 부적절한 속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전방위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티 모바일 T-Mobile의 존 레저

John Legere 같은 CEO들에겐 자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속어들이었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로 평가 받을 수 있음을 인지하라. 맥도널드 미국 담당 사장을 지낸 후 현재 몬산토 Monsanto와 치코 Chico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젠 펠드는

”자신이 당당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비난에 맞서라. 진흙탕 싸움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그 싸움에 끼어들면 당신만 더러워질 뿐이다“라고 조언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Jennifer Reing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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