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에 지능(AI)이 생기고 세상이 모두 연결되는(사물인터넷·IoT) 4차 산업혁명. 19세기 산업혁명과 20세기 인터넷 같은 정보기술(IT) 혁신을 뛰어넘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야 향후 100~200년을 앞서나갈 수 있다. 네 번째 산업혁명이라는 말에서 보듯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요 주체는 기업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생각하는 4차 산업혁명의 리더 경영인은 누굴까. 언뜻 글로벌 전자회사인 삼성과 LG를 떠올릴 것 같지만 일반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국내 주요 기업가보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언급량)가 2~30배가량 높았다. 4차 산업혁명 하면 쿡이 먼저 떠오른다는 뜻이다. 그만큼 국내 최고경영진의 혁신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서울경제신문이 빅데이터 분석업체 리비(Leevi)를 통해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25일까지 뉴스와 블로그, 각종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올라온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글 9만2,371건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뉴스와 인터넷상의 각종 게시물을 센 것이지만 국민들의 눈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처하는 경영인이 누군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게 리비 측의 설명이다.
실제 국내 기업인 가운데 4차 산업혁명 관련 언급량이 가장 많은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330건이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이끌면서 4차 산업혁명의 꽃인 AI와 IoT, 바이오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와 AI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322건으로 2위였다. 국내 대표 인터넷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는 네이버의 이해진 의장(287건)과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151건)이 뒤를 이었다. LG전자와 LG화학을 거친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118건)과 자율주행자동차를 개발 중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89건)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51건)와 구본준 LG 부회장(24건), 김범석 쿠팡 대표(11건)도 국민들의 관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국내 주요 기업인 중 1위인 이재용 부회장도 애플의 팀 쿡(683건)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었다. 쿡은 국내 자료 검색시 가장 많이 나온 외국 기업인 1위다. 스티브 잡스 사후 경영 전면에 나선 쿡은 예전에 비해 실적이 나빠졌고 혁신의 정도가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기업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기업인으로 꼽힌 셈이다. 지난해 쿡은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의 증강현실(AR) 모바일게임 ‘포켓몬 고’와의 제휴를 성사시켰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경우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수평적 기업문화와 협업에 취약한 것이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온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단순히 애플과 삼성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력이 2배 차이를 보이는 게 아니라 회사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오너와 전문경영인들의 ‘오픈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구글이면서 젊은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순위가 낮은 것도 혁신과 개방의 속도가 갈수록 느려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관료주의에 젖은 회사를 혁신하고 우리나라와 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뉴 앙트러프러너십(New Entrepreneurship·새로운 기업가정신)’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초연결사회, 즉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라는 것인데 지금까지 대기업은 인하우스·클로즈드 전략에 머물러 있었다”며 “우리 기업 지도자들도 모든 것이 연결된다는 열린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경영인들부터 권위주의를 버리고 국민과 직원들을 배려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4차 산업혁명은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융합 리더십이 기업인에게 절실하다”며 “이해관계에 대한 조정 능력과 통찰력, 개개의 현상을 이해하는 이해력이 앞으로의 경영인들에게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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