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일본) 상대요? 자신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고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깨부술 수 있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양의지(30·두산 베어스)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팀 주전 포수로 2017년 한 해를 연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야구는 오는 3월6일 서울에서 개막하는 제4회 WBC에서 또 한 번의 위대한 도전에 나선다. 한국은 그동안 1회 대회 4강, 2회 준우승으로 신화를 썼지만 이번에는 역대 최약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타급 선수들이 부상과 각종 사건 사고 등으로 대거 참가하지 못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현역 최고 포수로 성장한 안방마님 양의지의 역할에 무게가 실린다.
양의지에게는 생애 첫 WBC다. 최근 강남의 한 피트니스센터에서 만난 양의지는 “프로에 막 입단했을 때 1회 WBC가 열렸다. TV를 보면서 ‘나도 정말 저런 대회에서 한 번쯤 뛰고 싶다’고 꿈만 꿨는데 그 꿈이 이뤄진다니 설레기도 하고 사명감도 생긴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대표팀 전력이 약하다는 얘기를 하자 지난 2015년 11월 일본에서 열렸던 프리미어12 대회의 기억을 떠올렸다. 12개국이 참가한 또 다른 야구대항전인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은 전력과 일정상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일본과 미국을 격파하며 초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때도 정말 악조건 속에서 좋은 성적을 냈잖아요. 같이 뛴 동료들 한 명 한 명에게 박수 쳐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조금 뻔한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달면 자기도 모르는 더 강한 힘을 짜내는 것 같아요.”
올해 만 서른이 된 양의지는 ‘아빠’가 된 후 처음 치르는 국제대회라 책임감이 남다르다. 이제 막 백일이 지난 딸은 아빠를 쏙 빼닮았다고. 양의지는 “이유식 먹이는 거랑 트림시키는 것은 자신 있다”며 웃어 보였다.
WBC 얘기를 계속 하면서 일본의 괴물투수 오타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속 160㎞대 ‘광속구’를 손쉽게 던지는 오타니는 프리미어12에서 2경기 13이닝 무실점에 21탈삼진으로 한국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양의지도 삼진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그러나 “과거야 어쨌든 항상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할 것이다. 몸에 맞는 볼로라도 출루하겠다는 끈질긴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은 2라운드에 일본과 맞닥뜨릴 예정이다. WBC에는 투구 수 제한 규정이 있어 오타니가 등판할 경우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강판을 앞당기는 게 가장 중요한 대응책일 수 있다. 타자로서보다 포수로 더 책임이 큰 양의지는 “소속팀 두산의 동료이자 대표팀 투수인 (장)원준이형이랑 조만간 따뜻한 호주로 넘어가서 먼저 WBC를 준비할 계획도 있다”며 “책임감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WBC에 대비해 먼저 호흡을 맞춰보고 현지에서 두산 전지훈련에 바로 합류하는 일정이다.
양의지는 포수 포지션이 “천직”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 시작할 때부터 쭉 포수였어요. 투수가 멋있어 보여서 잠깐 하려 했는데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반드시 포지션을 바꿔야 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거포 이미지가 있는 3루수가 멋지기는 할 것 같다”고 했다.
야구를 흔히들 투수와 타자의 수 싸움이라고 하는데 투수를 완성하는 것이 바로 포수다. 양의지는 두세 수 앞을 내다보는 수 읽기와 투수 리드에서 최고수로 평가받는다. 이런 얘기를 건네자 양의지는 “제가 잘하는 것은 그런 것보다 상대 팀 타자를 귀찮게 하는 것”이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마스크 쓰고 앉아 있으면 타자를 가장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서 있는 자세라든가 기분이 어때 보인다든가 관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말을 많이 걸죠. 말 좀 그만 붙이라고 짜증 내는 타자도 있어요.” 대체 어떤 말을 건네느냐고 물었더니 “영업비밀”이라며 웃음으로 넘겼다.
양의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포수는 “묵묵한 리더”다. “너무 가벼운 존재여서는 안됩니다. 동료들이 가볍게 보면 불필요한 개입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확실하게 컨트롤하면서 팀을 끌고 갈 줄 알아야 합니다.” 양의지는 그런 포수가 되기 위해 박경완·조인성·강민호 등 다른 팀 포수 선배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조언을 구한다.
신인왕 출신으로 3년 연속 골든 글러브에 한국시리즈 MVP까지…. 신인 드래프트에서 사실상 막차로 프로 유니폼을 입었던 2006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양의지는 “1군에 꾸준히 머무는 선수가 되겠다는 꿈만 좇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나는 1군 선수가 될 거야’라고 적은 신인 시절의 메모를 지금도 한 번씩 꺼내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지난 시즌 성적은 타율 0.319, 66타점. 22홈런을 치는 동안 삼진은 29번밖에 안 당했다. 부상 탓에 108경기(전체 144경기) 출전에 그친 게 못내 아쉽다는 그에게 올해는 30홈런, 100타점을 기대해도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좋죠”라는 선선한 대답이 돌아왔다. “스윙이 성의 없어 보인다”는 일부 팬들의 지적에는 “진짜 있는 힘껏 치는 거다. 중계 영상으로 보면 휘두를 때 눈에 띄게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시범경기랑 정규리그 첫 한 달이 가장 중요하다. 상대의 스타일이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빨리 파악하느냐에 팀 성적이 달렸다”며 한국시리즈 3연패 열망을 드러낸 양의지. 그는 “나중에 두산 베어스에서 가장 잘했던 포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싶다”고 했다. “일단 현재까지는 베어스에서 우승 두 번 한 포수는 저뿐이에요. 모르시는 거 아니죠?”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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