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대통령을 풍자하는 소재로 쓰이고 최근엔 조류독감(AI)까지 겹쳐 닭이 고초를 겪고 있다. 그러나 닭은 12지 동물 중 유일하게 날개 달린 짐승이라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심부름꾼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닭은 머리에 관을 쓴 문(文),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무(武), 물러서지 않고 적과 싸우는 용(勇), 먹을 것을 찾으면 소리쳐 알려 인정을 나누는 인(仁), 시간을 지켜 새벽을 알리는 신(信)의 다섯 가지 덕을 갖춘 덕금(德禽)이라 불렸다.
정유년을 맞아 닭을 소재로 한 현대적 민화 42점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새날을 여는 새 그림-서공임 민화전’이 롯데갤러리에서 열린다. 화가 서공임은 40여 년간 민화(民畵)만 파고든 작가로, 국내 개인전은 2년 만이고 닭을 주제로 한 전시는 12년 만이다. 불행을 막고 복을 비는 벽사초복의 뜻을 담아 호랑이나 닭 그림을 집안에 붙이는 세화(歲畵)의 전통을 따라 ‘때 맞춰’ 전시를 열었다. 수탉의 붉은 벼슬이 관직을 얻어 출세한다는 뜻을 갖고, 알 낳는 암탉이 다산과 자손 번창을 상징하기 때문에 닭 그림은 그 자체로 좋은 기운을 준다고 전한다.
수탉 한 마리가 병아리 다섯 마리를 거느린 그림은 고대 중국에 다섯 임금을 모셨던 원로 재상이 아들 다섯을 잘 가르쳐 모두 벼슬에 오르게 한 설화를 담고 있다. 작품 ‘새 날을 밝히다’에서는 병아리들이 둥지에 올라 놀고 있는데, 한자의 둥우리 과 자는 과거시험의 과 자와 음이 같아 둥지에 올랐다는 게 곧 과거에 급제했다는 등과(登科)와 같은 의미로 읽힌다.
맨드라미와 함께 있는 닭 그림은 높은 벼슬을 상징한다. 맨드라미가 닭 벼슬과 비슷해 계관화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닭과 맨드라미가 합쳐지면 ‘관상가관’이라 하여 ‘관 위에 관’이라는 뜻으로 통했다.
모란과 함께 등장할 때는 수탉이 하늘을 향해 크게 우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수탉을 한자로 공계(公鷄)라고도 하는데, 공계의 공(公)에 운다는 뜻의 명(鳴)이 합쳐지면 공을 세워 널리 이름을 알린다는 공명(功名)과 음이 같다. 따라서 부의 상징인 모란꽃에 울고 있는 수탉을 그려 넣으면 그 자체로 ‘부귀공명’이 된다.
이 외에도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가슴을 편 채 화려한 꼬리를 늘어뜨린 닭은 당당함과 넉넉한 인생을 의미한다. 작가는 전통 공예에 자주 등장하는 마주 보는 암탉과 수탉의 문양도 회화로 옮겨와 가족 사랑을 표현했다. 전시는 오는 6일부터 2월5일까지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 이어 8일부터 3월5일까지는 안양점에서 열린다. (02)2118-2787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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