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선거가 조기 대선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대권 잠룡들의 경제구상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저성장·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복지·교육제도를 전면 손질하고 이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빠듯한 대선일정으로 검증시간이 가뜩이나 모자란데다 뚜렷한 재원계획을 밝히는 후보가 없어 결국 역대급 포퓰리즘의 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인기 없는’ 기업 구조조정 등 구조개혁에 대해서는 잠룡들이 일제히 입을 닫고 있고 미래 먹거리인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어느 후보도 명쾌한 그림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기업투자와 소비심리가 더욱 움츠러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기본소득제, 포퓰리즘 불쏘시개 되나=3일 서울경제신문이 대선 잠룡 7인(문재인·반기문·이재명·박원순·안철수·안희정·유승민)의 경제 공약을 분석한 결과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제외하고 모든 후보가 소득재분배에 의한 경제성장을 주장하고 있다. 가장 극단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그는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의 현금을 쥐어주는 ‘기본소득제’를 주장하고 있다. 해마다 50조~60조원의 재원으로 한 가구당 300만원씩 지급하는 구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주장한다. 아동·청년수당, 장애수당, 노인 기초연금 등으로 생애주기별 기본소득 지급을 내걸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기업에서 가계로 경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국민성장’을 내걸고 있다. 다만 기본소득제 같은 보편적 복지에는 신중하다. 비정규직 차별, 정부의 청년 일자리 확대, 민간 기업의 법정노동시간 준수에 따른 신규 일자리 창출 등을 제시한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역시 “도덕적 해이를 막는, 책임이 전제된 복지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 전 총장도 가계소득 증대, 복지 확대 등 소득재분배를 강화하는 공약을 내걸 가능성이 크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가계가 어려워 소득을 늘리는 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일회·소모성, 선심성 정책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부자증세냐 법인세 인상이냐 팽팽=재원에 대한 입장은 어떨까. 이 시장은 영업이익이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 440곳의 법인세율을 30%로 올려 15조원, 10억원 이상 버는 초고소득자 6,000명의 세율을 50%로 올려 2조원을 추가로 걷자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법인세는 지난 2015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공동 4위로 뛰어오르고 소득세도 네덜란드(52%)에 이어 공동 2위가 된다. 박 시장도 법인세·소득세 최고세율 즉각 인상을 주장하고 있고 세출 조정, 토건예산 감축, 기존 수당제도 정비 등을 내건 상태다.
문 전 대표는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자본소득 과세 강화에는 찬성하지만 법인세 인상에는 신중하다. 대기업 조세감면부터 줄여 실효세율을 올리고 그래도 부족하면 명목세율을 올리는 점진적인 증세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안 지사는 법인세·소득세 인상에 동의하면서도 정부 혁신으로 국민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유승민 개혁보수신당(가칭) 의원도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에 동의하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어느 계층에 얼마나 주고,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정확한 계산부터 내놓아야 유권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예상보다 빨리 나올 경우 오는 3월 말 ‘벼락치기 대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약 검증시간이 예년보다 부족해지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등과 같이 대선 이후 소모적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구조개혁 등 ‘쓴 약’은 외면=재벌개혁 역시 경제 리더십의 또 다른 축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안이 가장 구체적이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경제검찰’ 수준으로 강화해 공정한 시장경제를 구축하고 재벌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투트랙’을 주장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재벌 관계자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사면 금지,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전수조사 등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기업 구조조정을 포함한 구조개혁, 4차 산업혁명 등에 대한 입장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개혁으로 창의적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유 의원이 “페이스북과 같은 혁신에 의한 경제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정도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는 하지만 국가 경제에 중요한 문제이므로 밑그림 정도는 제시해야 하는데 아직 보이지 않는다”며 “자기 이름을 건 치밀한 공약을 내놓아야 제대로 된 선거를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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