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반도체 슈퍼 호황이 찾아왔습니다.”
최근 반도체 시황을 지켜보며 국내외 전문가들이 일제히 내놓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IoT)·스마트카·인공지능(AI) 등 신시장이 열리면서 완연한 장기 호황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보고 있다. 당분간은 ‘꽃길’만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룬다.
과연 그럴까. 일단 큰 흐름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낙관론만 펼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론도 나온다. 도리어 1~2년 후 치킨게임의 재발을 우려하는 의견도 나온다. 반도체 시황의 굴곡이 워낙 심한데다 무엇보다 ‘반도체 굴기’를 외치는 중국이 큰 변수다.
◇4차 산업혁명이 일으킨 반도체 슈퍼 호황 언제까지=과거 반도체 시장은 3~4년을 주기로 수요·공급이 엇갈리며 호황과 불황을 오간다는 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일본 엘피다의 파산 뒤 계속된 현재 반도체 호황기는 오는 2020년을 넘어서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의 최신 전망치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3,571억달러(약 423조원)에 달하는 세계 반도체 시장은 2021년까지 연평균 4.9% 성장세를 지속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선도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같은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7.3%에 이른다.
세계 경기의 침체와 스마트폰·PC 성장의 둔화 추세에도 반도체 업계가 장기 호황을 기대하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IoT·AI·스마트카 때문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인텔·퀄컴·엔비디아를 비롯한 거대 반도체 기업들은 고성능 반도체가 필수인 IoT·AI·스마트카 분야에서 매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 기업들은 최근 모바일·PC보다 4차 산업혁명과 직결된 서버용 반도체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면서 “이제는 차량용 반도체에서도 서서히 매출·영업이익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中 반도체 굴기, 슈퍼 호황 걸림돌 될까=하지만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반도체 시황에 호재만 깔려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우선 반도체 공정 기술 개발에 드는 비용이 급증하면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의 수도 갈수록 제한되고 있다. 결국 진입 장벽이 올라가면서 시장의 성장 속도가 점차 느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의 성장 속도가 무한정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더욱이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한번 흐름이 바뀌면 금세 조단위의 손실로 이어진다. 과거 하이닉스반도체가 그랬고 외국의 쇠락한 많은 업체가 시장의 부침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중국 국영 칭화유니그룹이 국영 반도체 회사인 우한신신(XMC)과 통합해 출범한 창장춘추과기(YRST)는 120억달러를 투입해 중국 내 D램 공장을 만들기로 했다. XMC도 240억달러를 들여 3차원(3D)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는다는 목표다. 푸젠진화집적회로공사도 대만 UMC와 합작해 지난해 7월부터 54억달러 규모의 D램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투자가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2018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공급이 지나치게 늘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깎는 치킨게임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현재로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 YRST는 D램 공장 건설을 위해 미국 마이크론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XMC도 아직 낸드 공장을 착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중국 기업들은 인수합병(M&A)·기술이전을 통해 미국 등지의 선진 반도체 기술을 습득하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거는 형편”이라면서 “중국이 제힘으로 반도체 공장을 지어 생산성을 끌어올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반도체 수요 증가세를 보면 중국이 반도체 생산을 본격화한다 해도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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