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은 지난 2014년 글로벌 방산·석유화학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삼성그룹과 빅딜을 시도했다. 빅딜은 현재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숨은 진주’ 한화토탈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15년 4월 삼성토탈이 한화그룹에 인수된 이후 탄생한 한화토탈은 출범 1년 만에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한화토탈의 성공 비결을 살펴봤다.
“방산과 화학 부문은 한화그룹 선대 회장과 제가 취임 때 부터 열정을 쏟았던 사업입니다. 남다른 사명감으로 회사를 일류기업으로 키워주길 기대합니다.” 지난 2015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말이다. 2015년은 한화그룹에게 매우 중요한 한 해였다. 재계와 국내 산업계 전반을 들썩이게 한 한화그룹과 삼성그룹의 ‘빅딜’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시너지’ 기대 품고 출범한 한화토탈
지난 2014년 한화그룹이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삼성탈레스, 삼성테크윈 등 삼성그룹의 석유화학·방산 분야 계열사 4곳을 인수했다. 2조 원 규모의 빅딜이었다. 한화그룹은 당시 빅딜을 통해 단숨에 자산 규모 55조 원의 재계 서열 9위로 뛰어올랐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방산 기업인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삼성탈레스(현 한화탈레스) 인수에 주목했다. 한화그룹이 태양광 사업과 함께 방산사업을 주력 사업으로 정하고 과감한 육성 정책을 시행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빅딜의 첫 시작을 알린 기업은 다름 아닌 한화토탈과 한화종합화학이었다. 2015년 4월 한화그룹은 삼성토탈과 삼성종합화학의 경영권 인수 작업을 마무리 짓고 새 출발을 선언했다. 다소 의외의 결과였다. 당시 한화그룹 측이 예상한 인수합병 완료 시점보다 두 달 앞서 작업이 완료됐기 때문이었다(삼성탈레스와 삼성테크윈 인수 작업은 예상대로 두 달 후인 2015년 6월 마무리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화토탈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빅딜은 석유화학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 간 자발적인 인수합병이었습니다. 어떠한 외부 요인도 포함되지 않았죠. 그렇다 보니 외부에서도 저희 빅딜에 대해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후속 조치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예정보다 빠르게 인수합병 절차를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한화그룹은 기존 한화의 석유화학 부문 경쟁력에 삼성토탈의 뛰어난 운영 노하우를 접목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 판단했다. ‘나프타-콘덴세이트-LPG’로 이어지는 원료 포트폴리오 다각화는 저가 원료를 기반으로 한 북미· 중동의 석유화학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키워드였다. 또 기존 에틸렌 일변도의 제품군에서 탈피해 경유·항공유 등 에너지 제품 등으로 제품을 다각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에틸렌의 경우에도 생산 규모가 세계 9위 수준인 291만 톤으로 증가해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한 원가 경쟁력 제고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수 절차가 마무리된 직후 김희철 한화토탈 대표는 “앞으로 한화그룹 화학 계열사들의 시너지가 본격적으로 실현될 경우, 보다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변화를 통해 자랑스러운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자”고 힘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한화토탈이 출범한 지 600여 일이 지났다. 한화토탈은 김 대표의 말처럼 국내외 석유화학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불과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한화토탈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수출로 써내려간 한화토탈의 성공기
지난 1973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수출 1억 달러 달성 기업(한일합섬공업)이 탄생했다. 정부는 이때부터 기업의 수출 성과를 치하하는 의미로 ‘수출의 탑’을 제정·시행하기 시작했다. 2016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2월 열린 ‘무역의 날’ 기념행사에서 지난 1년간 국내 기업 중 수출성과가 우수한 기업을 대상으로 ‘수출의 탑’ 시상식이 진행됐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총 1,209개 기업 중 가장 빛나는 성과를 올린 기업은 다름 아닌 한화토탈이었다.
한화토탈은 수상기업 중 유일하게 ‘50억 달러’ 수출탑을 거머쥐었다. 이번 수상은 한화토탈에게 매우 의미가 크다. 수출의 탑 선정기준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총 1년간의 수출실적만을 대상으로 수상기업을 선정했다. 2015년 7월은 한화토탈이 출범한 지 불과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실상 한화토탈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수출 부분에서 크게 발현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한화토탈은 설립 초기부터 내수 시장보단 해외시장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업을 진행해왔다. 한화토탈은 그동안 석유화학 촉매 및 제품의 국산화를 끊임없이 추진하며 수입 대체 및 수출 증대에 힘써 왔다. 특히 지난 2007년에는 국내 석유화학사 중 최초로 폴리프로필렌(PP) 중합 촉매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연간 70만 톤 규모의 PP 생산에 소비되는 PP 공장용 수입 촉매를 전량 대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PP 중합 촉매는 글로벌 석유화학기업들이 기술 이전을 회피하는 수지 사업의 핵심 기술 중 하나다. 자연스레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한화토탈의 PP 중합 촉매 개발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업계에선 이번 수상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로 한화토탈 출범 이후 물리적·화학적 결합에 힘을 쏟아온 김희철 한화토탈 대표의 역량을 꼽고 있다. 김 대표는 1988년 한화그룹 입사 이후 한화케미칼 경영기획담당, 한화L&C 미국 법인장, 중국 한화솔라원 대표이사, 독일 한화큐셀 대표이사, 한화그룹 유화 사업본부 전략본부장을 거친 석유화학 부문 전문가다. 김 대표는 한화토탈 대표에 취임한 이후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경영 전략의 큰 틀을 다지는 데 주력해왔다. 안전·원가·품질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술, 운영, 현장 등 전 부문에 걸친 혁신 노력을 이어갔고, 지속적인 수출 확대를 위한 시장 개척에도 집중했다.
이러한 김 대표의 노력이 빛을 본 대표적인 부문이 바로 태양전지 봉지재(태양전지 모듈의 효율성과 장기내구성을 높이는 얇은 시트 형태의 핵심 소재)용 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EVA) 제품(이하 태양전지용 EVA) 사업이다. 한화토탈의 태양전지용 EVA는 지난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세계 일류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일류상품은 세계시장 점유율이 5위 이내 또는 5% 이상인 제품 중 세계시장 규모가 연간 5,000만 달러, 연간 수출 규모가 500만 달러 이상인 제품을 일컫는다. 한화토탈은 35만 톤 규모로 성장한 글로벌 태양전지용 EVA 시장에서 약 35% 점유율을 달성하며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에는 치밀하게 EVA 시장을 분석한 김희철 대표의 전략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한화토탈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태양전지 봉지재는 EVA에 포함된 초산 비닐의 함량에 따라 범용과 고부가 제품으로 나뉩니다. 초산 비닐 함량이 28% 이상이면 고부가 제품에 속하는데, 이는 초산 비닐 함량이 높을수록 같은 양의 원료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저희는 범용 EVA 제품 시장보단 고부가 제품 시장에 주목했습니다. 범용 제품 시장에선 공격적인 설비투자를 앞세운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죠. 대신 기술 격차를 통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 EVA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한화토탈은 지난 2014년 2월 연간 24만 톤 생산량의 제2 EVA 공장을 완공하며 국내 단일업체론 최대인 연간 32만 톤 규모의 EVA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한화토탈은 이 같은 대규모 생산시설과 고부가 제품 기술력을 기반으로 태양전지용 EVA 제품에서 향후 5년간 1조5,0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앞으로도 중국, 중동 등 경쟁국 석유화학사들과 격차를 벌리기 위해 고부가 제품 개발 및 시장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완벽한 화학적 결합으로 내부 혁신 이끌어
한화토탈은 한화와 삼성이라는 전혀 다른 조직 문화의 결합체다. 그 때문에 물리적 결합보단 화학적 결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화학적 결합 없이는 한화토탈이 출범 청사진으로 내건 ‘혁신과 변화’는 요원할 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한화토탈은 양사 직원 간 화학적 결합에 유독 공을 들였다. 김희철 대표가 직접 발 벗고 나섰다. 김 대표는 한화토탈의 정식 출범 이후 수시로 충남 대산공장, 서울사무소 임직원들과 식사 및 티타임을 가지며 열린 소통 창구를 열었다. 한화이글스 경기관람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한화클래식’, ‘한화와 함께하는 교향악축제’ 등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공연에 임직원과 가족들의 참석을 유도하며 한화그룹의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기회도 제공했다.
이 같은 노력은 한화토탈의 실적 상승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상보다 빠른 화학적 결합과 내부 결속력 강화를 통해 예상보다 빨리 시너지 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성공적인 화학적 결합은 건강한 내부 경쟁도 촉발시켰다. 조직 혁신을 위한 회사 차원의 행사에 직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화토탈이 개최한 제1회 ‘프로세스 솔루션 컨테스트’가 이 같은 변화를 증명하는 사례 중 하나다. ‘프로세스 솔루션 컨테스트’는 전 세계 700여 개 정유·석유화학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공정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아스펜 플러스(Aspen Plus)’ 등을 활용해 새로운 공정 모델을 개발하고, 기존 공정의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발표·공유하는 행사다. 첫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총 23팀이 참가해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다.
이번 컨테스트 과정에서 한화토탈 측은 아스펜 플러스 전문가를 초빙해 워크숍과 세미나를 실시하는 한편, 참가자들이 추가로 필요로 하는 다양한 교육을 맞춤식으로 제공해 실질적인 역량 향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 각 팀별로 선배 엔지니어를 멘토로 지정해 선후배 간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고 조직 융합의 장으로도 활용했다.
한화토탈은 협력사와의 소통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토탈은 공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90% 이상이 협력사 및 하청업체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협력사 직원의 안전확보가 곧 상생경영의 출발점’이라는 인식하에 협력사 안전관리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나섰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석유화학 공장에서 안전사고는 회사의 존폐로 이어질 만큼 중요한 요소”라며 “한화토탈은 협력사 직원들에게 행복한 근무할 수 있는 안전한 업무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진정한 상생경영을 실천할 계획”이라고 시스템 업그레이드의 이유를 설명했다.
중국 시장 품에 안고 글로벌 기업 도약
한화토탈 출범 후 지난 2년간 나온 성과는 꽤 긍정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내부적으론 현재보단 미래 성장에 더욱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희철 대표도 최근 공식 석상에서 “석유화학업 시황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만큼 내년은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김 대표가 이처럼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수출의 힘’이다. 한화토탈 전체 매출의 70%가 수출에서 발생하는 만큼 2017년에도 글로벌시장 확대를 포함한 수출 역량 강화에 사력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한화토탈의 핵심 글로벌 수출 시장인 중국에 주목하고 있다. 한화토탈 수출 물량의 30% 가량을 책임지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당장 내년 한화토탈의 성장에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한화토탈 측도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말한다.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화학 수요국이자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입니다. 한화토탈의 경우도 중국 수출액이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최근 중국 내 석유화학제품 자급률이 높아지고 북미와 중동지역 에탄 베이스 석유화학 제품의 중국시장 유입이 가속화하면서 중국시장 내 경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화토탈이 매년 중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술세미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화토탈은 지난 2013년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플라스틱 산업전시회 ‘차이나 플라스(China Plas)’에서 현지 고객 대상 기술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이 세미나를 통해 한화토탈은 최신 기술 트렌드와 연구개발 동향 등 현지 고객사 비즈니스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화토탈 스스로도 세미나를 통해 현지 고객사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제품을 꾸준히 개발·출시하고 있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김희철 대표를 포함해 주요 영업부문장들은 중국 핵심 거래처와 공장을 방문해 현황을 점검하고 고객의 애로사항을 듣는 이른바 ‘관시(關係)’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탄탄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향후에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토탈은 출범 2년여 만에 한화그룹의 알토란같은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빅딜 4개사 중 가장 이른 시점에 연착륙에 성공했고, 글로벌 석유화학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준비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화토탈은 앞으로도 지난 2년간 보여준 시너지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2017년 정유년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해 볼만하다는 평가가 많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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