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통신사 KDDI와 도쿄미쓰비시은행이 합작해 설립한 지분은행은 연평균 50%에 가까운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K뱅크가 성공 모델로 제시한 은행이기도 하다. 또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쿠텐이 지난 2008년 이뱅크를 인수해 설립한 라쿠텐뱅크는 다음 해인 2009년 흑자 전환에 성공, 이후 연평균 자산이 15% 이상 성장했다. 이 밖에 미국의 앨리뱅크, 일본의 소니뱅크, 유럽의 폭스바겐뱅크 등 미국·일본·유럽의 대표적 인터넷은행 모두 산업자본 소유로 성공적인 인터넷은행 성장기를 써나가고 있다.
이들이 성공 가도를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차별화된 서비스가 자리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손잡은 덕분에 시중은행들이 내놓지 못했던 서비스들로 고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지분은행은 모회사이자 일본 2위 이동통신 업체인 KDDI의 통신역량을 활용해 상대방 전화번호만 알아도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또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신분증을 촬영하고 지분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송, 신분증 정보가 자동으로 등록되면 은행계좌 개설 신청이 접수된다. 5일 후면 현금카드가 신분증의 주소지로 배송된다. 일본 라쿠텐은행은 모회사 라쿠텐에서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는 회원 9,000만명의 구매 명세를 분석하고 적합한 금융 서비스를 추천한다. 상대방의 이름과 e메일 주소만 알면 송금도 된다. 주택담보대출시장까지 인터넷전문은행이 넘보고 있다. 소니은행은 자사 빅데이터 고객 정보를 활용해 별도의 보증 없이도 대출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내놓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 인터넷전문은행인 마이뱅크에서는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최대 500만위안(약 9억원)까지 중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알리바바그룹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타오바오, 전자결제 시스템 알리페이, 자산운용 시스템 위어바오 등의 고객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신용을 평가하고 돈을 빌려준다.
금융 업계에서는 일본이나 미국·유럽·중국 등의 경우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관련 지분 규제가 우리나라처럼 엄격하지 않아 비금융 주주들의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이 같은 투자가 다시 적극적인 신규 서비스 개발 및 출시, 영업으로 이어지면서 선순환 성장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에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관련 제한이 없다. 일본의 경우 은행법상 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지배를 제한하는 명시적 조문이 없다. 유럽 역시 별도의 은행 지분 소유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은산분리 원칙을 고수하는 미국에서도 산업자본이 일반은행의 지분 25%까지 보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모바일뱅킹의 기능적 진화를 넘어 ICT 등 비금융 자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디지털 혁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안정적 지배구조 구축을 위한 제도개선 작업이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 들어서도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규제를 완화하는 은행법 개정안과 이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허용하는 특별법까지 발의된 상태지만 국정공백 상태로 국회 통과를 낙관하기 힘든 형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 K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주축인 KT와 카카오 지분율은 10% 미만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의 혁신을 제도적인 측면에서 지원하기 위해서는 은산분리 완화 등 법적 토양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