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역난방공사 기업공개(IPO) 이후 7년 만인 한국전력 산하 발전 자회사의 IPO 수수료 덤핑논란이 거세다. 증권사들의 제 살 깎기 식 과당경쟁이 주된 요인이지만 공기업의 수수료 위주 평가체계가 덤핑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연내 상장을 추진하는 남동발전 수수료가 지난해 연말 공모액의 0.2%에 결정된 데 이어 최근 주관사를 선정한 동서발전의 수수료는 0.1% 안팎으로 떨어졌다. 이는 통상적인 IPO 주관 수수료 1~1.5%에 비해 10분의1에 불과한 수준이다. 사실상 출혈 경쟁이 낳은 덤핑 수주인 셈이다. 남동과 동서발전의 본사가 경남 진주와 울산에 위치해 IPO 인력 상당수를 지방에 배치해야 하는 관계로 지방 상주 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수입은 마이너스나 다름없다. 동서발전은 한국투자증권이, 남동발전은 미래에셋대우(006800)가 각각 대표주관을 맡았다.
IB업계 관계자는 “먼저 실시한 남동발전 주관사 선정에서 탈락한 증권사들이 수수료 인하 경쟁에 뛰어들면서 동서발전 수수료 덤핑은 예견된 일이었다”면서도 “0.1% 수준까지 제시됐다는 점은 상식 밖”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과열 경쟁은 각각 1조원에 이르는 공모규모여서 실적쌓기(트랙레코드)를 위해 일단 일감부터 따내고 보자는 경쟁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IPO 1조원 이상 대형 딜은 흔하지 않은데다 ‘공기업 프리미엄’도 과열 경쟁을 낳게 하는 요인이다.
IB들의 출혈경쟁에는 덤핑을 유도한 발전 자회사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공기업 상장주관사 선정 시 수수료율 배점이 다른 평가항목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 문제다. 남동발전의 경우 수수료율 배점이 30점으로 공모가 배점과 함께 가장 높았다. 증권사 과열 경쟁을 막겠다며 수수료율 배점을 조정한 동서발전의 경우도 25점으로 사실상 수수료율이 주관사 선정을 좌우했다. 앞서 2009년 상장한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수수료는 0.01%였다.
반면 민간기업 IPO에서는 사정이 딴판이다. 오히려 0.1% 수수료를 제시하고도 탈락한 사례도 있다. IPO의 품질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수사로 무산된 호텔 롯데의 IPO 주관사 선정이 그랬다.
증권사 IPO 관계자는 “공기업 거래의 경우 최저 입찰 요율을 제시한 후보가 가격평가에서 고득점을 기록하게 된다”며 “공기업 딜에서는 수수료가 주관사 선정에서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도록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공기업 딜이 나올 때마다 수수료 덤핑은 반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남동·동서발전 외에도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에너지 공기업이 추가 상장할 예정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이상이라는 점도 증권사로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 주관사들은 남동은 1.02배, 동서는 1.5배를 제시했다. 남동·동서발전 모두 공모가 배점이 수수료율 배점과 같아 주관사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PBR 1배 이상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모회사인 한국전력의 PBR가 0.4배 수준이라는 점에서 남동과 동서발전의 PBR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지만 주관사 입찰 경쟁이 극심해 조정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 비율이 높다는 것은 공모 가격 상승요인으로 작용해 자칫 수요예측이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한편 NH투자증권(005940)은 남동·동서발전 공동주관사로 선정됐지만 대표주관사의 수수료와 주가순자산비율(PER)이 지나친 수준이라는 이유로 포기했다. 이들 발전공기업은 입찰제안요청서(RFP)에서 수수료와 기업가치는 대표주관사가 제시한 수치에 맞춰야 한다는 규정까지 명시해 공동주관사는 대표주관사 기준에 따라야 하는 처지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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