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명민한 두뇌와 오랜 해외 생활로 풍부한 식견을 갖췄다고 지인들에게 평가받는다. 그런 이 부회장도 50년간 삼성그룹을 휘감아온 ‘어둠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역대 권력자에 부적절한 금품·혜택을 제공했다는 굴레가 할아버지인 고(故)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아버지 이건희 삼성 회장에 이어 이 부회장에게도 씌워질 조짐이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세계 선진기업으로 삼성을 탈바꿈시키기 위해 애써왔다”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특별검사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삼성은 한국의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권이 기업을 돕고 기업이 권력자의 주머니를 채우는’ 정경유착의 원죄를 오랫동안 쌓아왔다.
물론 대부분 어둠의 근원은 삼성이 아닌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기업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부조리였지만 입법·행정·사법 3부에 걸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역대 정권의 압력도 컸다.
삼성의 원죄는 지난 1966년 삼성 소유의 한국비료주식회사가 건설자재로 위장한 사카린을 국내에 들여와 팔려다 들통난 게 시초다. 삼성과 박정희 정권이 밀수로 번 돈을 나눠 가지려 했다는 의혹이 일자 호암은 경영 은퇴를 선언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이맹희·창희 형제도 호암의 신뢰를 잃었다.
호암이 형들을 제치고 후계자로 선택한 이 회장도 정경유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전두환 정부(5공화국)와 노태우 정부의 비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은 뇌물공여죄가 인정돼 1996년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10월 사면받았다. 이 회장을 보좌하던 이학수 전 삼성전략기획실장(부회장)도 2002년 대선정국 당시 유력 주자들의 선거 캠프에 불법 자금을 뿌린 죄로 집유 처벌을 받았다.
2005년에는 이학수 등이 정치권·검찰에 대한 금품 제공을 논의한 대화가 녹음파일 형태로 폭로된 ‘삼성 엑스파일’ 사건이 터졌다. 이어 2007년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의혹 폭로로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출범, 구조본이 정치자금 등의 목적으로 관리하던 차명 자금 4조5,000억원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 회장이 이 부회장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불거진 배임·탈세 논란도 삼성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다.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 역할을 하는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가 각각 신주인수권부사채(BW·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이 부여된 채권)와 전환사채(CB·일정 조건에 따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를 이 부회장과 이부진·서현 남매에게 헐값으로 발행해줘 상속세를 제대로 치르지 않고 그룹 경영권을 승계시켰다는 게 골자다. 삼성SDS BW는 배임죄가 인정됐다. 에버랜드 CB는 2012년 민사재판에서 배임죄 판결을 받았다.
이 밖에 1993년 삼성종합건설(현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규정을 무시한 공사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해 280여명이 죽거나 다친 ‘구포역 참사’,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선 삼성-1호가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충돌해 충남 태안 앞바다에 원유 1만2,547㎘를 유출시킨 허베이스피릿호 원유 유출 사고도 삼성 ‘흑역사’의 일부다. 2014년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이숙영씨에 대해 법원이 산업재해를 인정하면서 삼성 경영진이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모든 과거의 허물을 이 부회장이 ‘뉴 삼성 플랜’을 통해 투명하고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통해 일소하려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이 부회장의 노력이 다시 한 번 구현될 수 있도록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 판정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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