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을 디딤돌 삼아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정조준하려 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9일 새벽 나온 법원의 영장기각 결정으로 동력을 다소 잃게 됐다.
박 특검은 영장기각 통보를 받은 직후 수뇌부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박 특검을 비롯해 박충근·이용복·양재식·이규철 특검보와 윤석열 수사팀장 등 수뇌부가 모두 참석해 앞으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격론에도 불구하고 영장 재청구 여부 등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별검사보는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를 자세히 검토한 뒤 내부 회의를 거쳐 앞으로 처리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특검팀 내부에서는 보완수사 후 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는 의견과 남은 일정 등을 고려해 불구속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영장기각이 자칫 ‘수사 실패’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피의자 구속 여부가 혐의의 여부를 따지는 기준은 아니지만 불구속 상태에서의 수사는 아무래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선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과 2013년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구속에 실패하고 불구속 수사한 뒤 기소했지만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검이 영장을 재청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단 법원이 밝힌 미비점을 보완해 영장을 재청구하기에는 남은 수사일정이 모두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수사 기한이 제한된 특검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특검이 ‘보완수사 후 영장 재청구’ 방침을 정한다면 오는 2월28일로 예정된 수사 종료 시점을 한 달 연장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장 없이 지금 일정대로 수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영장 재청구 방침이 정해지면 삼성이 제공한 자금의 ‘대가성’을 증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야 한다. 최순실씨 측에 전달한 자금이 사실상 박 대통령을 지원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른바 ‘경제적 공동체’ 논리에 대한 보완도 필요하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 부회장의 신병 확보가 좌초된 만큼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등 ‘핵심 3인방’에 대한 구속 수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 구속을 예상하고 이들 3명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영장이 기각된 상황에서 조속히 ‘플랜 B’를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장 재청구가 어렵다면 주변 인물들을 구속해 이 부회장을 압박하는 전략으로 선회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특검팀은 이들 가운데 최 부회장에 대해서는 뇌물공여 혐의의 공범으로 입건해놓은 상태다.
특검은 여전히 430억원에 이르는 삼성의 출연·지원금이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부회장 구속에는 실패했지만 변함없이 수사를 진행해 2월 초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실시한 뒤 혐의 유무를 밝혀내겠다는 구상은 유효하다. 롯데와 SK·CJ 등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하고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다른 대기업들에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입장도 여전하다. 다만 이번 영장기각으로 각 그룹 총수에 대한 소환은 다소 힘이 부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신 삼성만으로는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적용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오히려 다른 대기업들의 수사 속도와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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