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 씨는 지난해 여름 강남의 유명 프랜차이즈 헬스클럽이 리모델링 이벤트로 회원가를 할인한다는 광고를 보고 가입을 신청했다. 100만 원을 내고 3개월간 전문가의 개인 지도를 받기로 한 것이다. 100만 원이 큰 돈 이었지만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영업하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의심 없이 결제했다.
헬스클럽 측은 약속한 날짜가 되자 리모델링이 늦어졌다며 차일피일 개장을 미루더니 추석 이후 갑자기 폐업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A씨는 가입을 상담했던 본사 직원에게 항의해 환불 약속을 받았지만 말뿐이었다. 소비자 보호원에 문의하자 이미 결제대금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도와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결국 A 씨는 피해 소비자 30명과 단체 소송을 벌이고 있다. 헬스클럽 측은 소송하지 않으면 환불을 해주겠다고 하지만 A 씨는 작정하고 먹튀한 헬스클럽을 믿을 수 없다며 소송을 이어갈 생각이다.
새해 들어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막대한 가입비를 낸 뒤 헬스클럽이 폐업하는 피해가 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헬스클럽 주인이 바뀌면 법적으로 기존 회원의 환불을 책임질 주체가 없어지고 프랜차이즈 헬스클럽 지점에서 발생한 일에 본사가 환불할 의무가 없다. 특히 최근에는 아예 작정하고 단기간 건물과 운동기구를 빌려 놓고 회원을 모집한 뒤 사라지는 악성업체도 발생하고 있다.
21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헬스클럽이나 요가강습소에 대한 소비자 피해구제신청은 2013년 964건에서 2016년 1,402건으로 3년 새 45%나 급증했다. 피해사례의 90%는 회원 가입 후 폐업하거나 소비자가 중간에 계약을 해지 했을 때 환불을 놓고 벌이는 분쟁이다.
소비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보지만 제대로 구제받을 수 없는 유형은 헬스클럽이 영업할 계획 없이 회원을 모집하고 폐업하는 경우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리모델링을 한다면서 회원을 한 몫에 가입 받은 뒤 6개월이나 1년 뒤 다른 사업자에게 폭탄 돌리기 하듯이 넘긴다”고 말했다.
문제는 새로 들어온 사업자는 대부분 법적으로 기존 회원에 대한 환불 의무가 없다는 사실이다.
상법상 새 사업자가 기존 회원에게 환불 의무를 가지려면 영업 양도로 인정받아야 한다. 영업양도는 사업자와 직원, 운동기구와 상호를 그대로 승계해야 하기 때문에 상호를 바꾸기만 해도 의무는 사라진다. 업계 관계자는 “헬스클럽 사업자는 대부분 운동기구를 빌려서 영업하기 때문에 큰 자본 없이도 뛰어들 수 있다”면서 “새 사업자가 들어올 때는 대부분 새로 운동기구를 들여오는 데 일부 업자들은 먹튀할 생각으로 단기간 임대계약을 맺는다”고 전했다.
프랜차이즈 지점이라도 소비자가 피해구제를 받을 길은 사실상 없다. 이름만 본점과 지점일 뿐 실제로는 각각 독립적인 사업자다. 심지어 프랜차이즈 본점과 지점이라고 하더라도 지점에서 생긴 분쟁을 본점이 구제할 의무는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지점에 공급한 물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지점에서 발생한 소비자 피해를 본점이 대신 책임질 법적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사기에 가까운 행위다 보니 소비자원조차 도움을 주지 못한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영업하던 헬스클럽에서 소비자가 계약 해지 시 발생하는 위약금이나 환불 분쟁은 조정할 수 있지만 아예 계획적으로 도주한 사업자는 사기죄에 해당하는 사건이어서 법적 강제력이 없는 소비자원의 분쟁 조정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전했다.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구제할 길은 사업자를 설득하거나 소송을 벌이는 길 뿐이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는 소송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소송을 하려면 사업자의 주민등록번호나 집 주소 등을 알아야 한다. 만약 사업자가 지자체에 등록했다면 신고필증을 요구해 기본 정보를 알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에 소비자의 피해를 설명하고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한다.
A 씨는 “지난 여름에 발생한 일에 대해 전자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반년 넘은 지금까지 해결을 못하고 있다”면서 “피해 구제를 위해 들이는 경제적 시간적 비용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와 수 개월에서 1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는 헬스클럽에 대한 소비자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달이나 1회 이용 시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 무조건 장기간 계약하도록 유도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폐업이나 사업자 변경 시 최소 한 달 이전에 소비자에게 공고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헬스클럽 가입자의 60% 이상이 대금 결제를 일시불로 하는데 계약기간을 짧게하고 결제대금도 할부로 내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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