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대규모 분식회계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기업과 회계법인의 관행화 된 ‘갑을 관계’이다. 외부감사를 받는 기업이 회계법인에 일감과 보수를 주는 구조 탓에 만들어진 ‘갑을 관계’는 회계 투명성을 흐리게 만드는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지난해 8월부터 관계기관이 참여한 회계제도 개혁 태스크포스(TF)가 기업과 회계법인의 불투명 고리를 끊기 위해 꺼내 든 카드는 지정감사제 확대다.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지정받으면 협상의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에 회계법인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보수감사를 과도하게 후려치는 등의 ‘갑질’을 할 수 없다.
금융위는 우선 분식회계로 중징계를 받았거나 횡령·배임 혐의로 처벌받은 임원이 재직 중인 상장사와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된 곳은 1개의 회계법인을 직접 선택해 통보(직권지정제)하기로 했다. 또한 대기업집단 계열사와 금융사를 비롯해 회계 투명성 유의 업종(건설·조선 등) 상장사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3개의 회계법인 중 한 곳을 선정(선택지정제)해야 한다. 또 애플, 구글, 샤넬 등 외국계 유한회사들을 외부감사 대상에 포함하는 외부감사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선택지정제 적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높은 수준의 회계 투명성을 요구하는 해외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은 선택지정제 적용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금융위는 직권지정·선택지정제의 적용을 받는 상장사가 전체(2016년 말 기준 1,958곳)의 5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을 대상으로 한 회계감리 주기는 25년에서 10년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금융당국은 판단한다.
상장사의 외부감사 업무를 일정 수준의 규모와 능력을 갖춘 회계법인에만 허용하는 ‘감사인 등록제’ 도입은 6년 만에 다시 추진된다. 이렇게 되면 내부적으로 외부감사 품질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무늬만 회계법인’은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디. 감사인 등록제는 미국 회계감독위원회(PCAOB)가 지난 2002년 대표적인 기업 분식회계 사건인 ‘엔론 사태’를 계기로 도입한 제도다. 금융위는 금융사와 대형 비상장사의 외부감사도 등록된 회계법인만 맡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까지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회계법인이 감사대상 기업을 상대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축소된다. 기존에는 해당 기업이 자산 매도를 위한 실사 업무 등만 금지됐지만 앞으로는 매수 목적의 가치평가, 자금조달·투자 관련 중개 업무까지 모두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 금융위는 감사대상 기업뿐만 아니라 자회사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외부감사 과정에서 주의가 요구되는 내용(수주 산업의 사업 진행 상황 등)을 감사보고서에 자세히 서술해 적는 ‘핵심감사제(KAM)’는 2019년부터 상장사에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분식회계가 적발된 기업과 회계법인에 물릴 수 있는 과징금은 상한(기존 20억원)이 없어지며 형벌 수위도 징역 10년 이하 또는 부당이득액의 3배 이하로 대폭 높아진다.
회계업계에서 강하게 원하고 있는 감사보수 기준 마련은 이번 제도 개선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금융위는 기업이 규모와 업종에 따라 외부감사 시간 기준을 만들어 법제화하기로 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최중경 회장 취임 후 외부감사 업무를 공적 재화로 인정받아 감정평가사처럼 보수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설정하고 외부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기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태현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상장사와 대형 비상장사는 의무적으로 외부감사를 받게 돼 있는데 여기에서 발생하는 비용(가격)을 정부가 정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감사보수 문제는 공인회계사회와 회계업계가 자율규제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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