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풀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세상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경제가 만성적인 불황 상태에 빠지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습관적인 경기부양책이다. 20년이 넘는 장기불황 동안 일본이 그랬듯이 앞으로 한국도 그런 관성을 따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돈만 풀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어떤 나라도 경제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않을 것이다. 세금이나 국채 발행으로 확보한 돈을 국가가 팍팍 써서 경제를 살리는 일은 쉽다. 만성적인 불황 상태가 우리를 압도하게 되면 두 가지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게 될 것이다. 나라가 1,000원을 투입하면 경제가 1,500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른바 투자승수 효과를 믿는 주장이다. 반대 측은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지적할 것이다. 1,000원을 투입하면 500원은 하수도로 흘러가 버리고 500원만 생산 증가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돈을 투입하면 할수록 국가부채는 늘고 생산적인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개발 초기에는 국가의 재정 투입에 따른 효과가 크지만 나라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국가 주도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이 일종의 삽질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여기서 삽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 재정을 낭비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게 순리와 상식에 따르면 된다. 경제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묘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계는 끊임없이 쓸모없는 것이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제거하면서 나아간다. 경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잘 통했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유용성이 떨어지는 제도·정책·기관·사업 등은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구조조정이 일상적으로 이뤄질 때 경제도 건강함과 역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 기술과 미래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케빈 켈리는 최근 저서의 시작 부분에서 60년의 삶을 통해서 본인이 최근에서야 깨달은 평범한 진리를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스스로를 유지하려면 추가 에너지와 질서가 필요하다. 나는 이 사실을 모든 것이 서서히 해체돼간다고 말하는 유명한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추상적인 형태로 깨달았다.” 그의 이야기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관심을 갖고 제거하고 고치고 추가적인 질서를 부여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격동의 시대라는 표현만으로 충분치 않을 정도로 세상이 요동치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과거의 덫에 깊이 매몰돼 있다. 과거의 것을 고치고 수선하는 데 열심이기보다는 과거의 것에 쓸데없는 것을 자꾸 덧붙이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쉬운 길로 가면 언젠가 큰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그 길로 자꾸 나아가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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